예나 지금이나 장대비가 내리면 우비를 찾아 비를 피하지 못하고 그냥 흠뻑 젖는다. 경단녀를 면한 지 근 십 년이 넘었다. 경단녀로 그냥 살았어야 했었나, 오십이 넘은 나이에 비도 피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장대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묘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해답도 찾지 못한 채 쓴 약을 물 없이 삼키듯 마른침을 삼킨다.
30년 전엔 우리 사회가 사주가 독식하는 행태를 벗어나기 위해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그때는 그래도 노, 사만 있었을 뿐이지 노측이 정규직, 비정규직 뭐 이런 묘한 이분화된 사회는 아니었다. 부모가 엄하면 형제자매끼리 우애가 돈독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직장생활은 형제애 그 이상의 애정이 넘치는 생활이었다.
그때는 워낙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세분화되지도 않았었고 할아버지가 아버지 나무라듯 대표가 부서장을 나무라는 게 분위기였다. "그렇게 일하려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 이런 말이 회의 석상에서 비일비재했었다. 한 집안의 가장인데 날마다 바짓가랑이 후들거리는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부서장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었다. 그렇게 호랑이 같던 대표도 때론 따뜻한 면을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진짜 애 보러 가지 않고 다음날도 출근을 한다.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때는 진한 인간애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버렸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았지만 비를 내리게 한 그 당사자가 우산을 내밀던 시절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영원할 것처럼 직장동료들끼리 똘똘 뭉쳐서 일 처리도 했었고 따뜻한 정도 나눴었던 시간들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한다. 그런 직장을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다녔어야 했었다. 쭉 경단녀를 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다시 하려고 했다면. 그럼 사회 초년생들이 느껴야 하는 아니, 초년생들도 느끼지 말아야 하는 씁쓸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매사 다 좋을 순 없는 게 현실이다. 과욕이었던지 관리자들의 인사이동이 있는 해라 좋은 인성의 관리자가 부임해 오길 원했었다. 첫 달에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감래 했었다. 어느 별에서 왔는지 외래어도 아닌데 이해되지 않는 언행에 신음하는 동료들이 속출했다. 무슨 심리인지는 모르지만 비를 함께 흠뻑 맞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마주 보며 소리 없는 미소를 나누곤 한다. 그렇게 서로 위로가 되어준다.
업무상 갑작스러운 회의가 필요했었다. 관리자들의 지시로 회의 시간을 정하고 내가 관리하는 프리랜서 직종의 분들께 연락을 하여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런데 바로 전날 회의 시간을 변경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의 출근시간 보다 더 빠른 시간을 회의 시간으로 정하는 관리자분들의 행동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지시 대로 참여해야 될 분들께 급하게 다시 안내를 했다.
회의에 참여할 분들의 차를 준비해서 회의 장소로 가는 중에 관리자분께 들렀는데 안 계셨다. 회의 장소로 먼저 가셨을 거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갔다. 회의에 참여가 어려울 거라는 분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관리자분도 당연히 자리에 계실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 계셨다. 사정이 있으시려니 생각하고 시간을 다투는 분들이 참석하셨기에 그분들을 배려해서 정해진 시간에 회의를 진행해야 된다는 판단으로 예정된 시간에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소집 목적에 맞게 진행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간에 관리자가 나타났다. 그 관리자분이 나를 향해 처음으로 하는 말이 나무라는 투로 "왜, 전화 안 하셨어요?"였다. 부적절하고 부당하고 무례하고 말할 수 없이 모욕감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회의 진행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다시 관리자분의 주도하에 장시간 회의가 진행되었고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분들을 이후 처음으로 오늘 만났다.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느냐, 늦었으면 늦어서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해도 좀 그런데 본인들 앞에서 내게 전화 안 했다고 면박 주듯이 말하는 게 그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냐, 네 시간 이상 차를 타야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는데 회의 참석하라는 말을 한 나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 시간에 맞춰 참석했고 회의 끝나자 일 때문에 왔던 길을 다시 갔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만 둘 마음을 먹고 관리자분께 관리자분의 행실의 부당함을 말씀드리려고 했었다는 말을 했다.
관리자라는 분은 거의 나와 동시대를 살아오신 분이다. 뭐를 주식으로 드시는지, 어떤 공기를 마시고 살았는지 묻지 않겠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누구의 마음대로 내게 그렇게 무례하고 무경우한 행동을 하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나는 묻지 못했다. 끙끙 앓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냥 참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내가 과민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차에 같은 공간에 있었던 분들이 대신 분개하는 걸 보면서 나만의 과민함이나 오해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여 한편으로는 공감해 주는 그분들이 고맙기도 했지만 이 나이에 그런 대우를 받고 참고 견뎌야만 하는 내가 내게 부끄러웠다.
오만한 관리자가 있는가 하면 귀한 시간 어려운 걸음을 단지 나를 위해 기꺼이 허락해 준 분도 있다. 오만하다는 그 표현을 참석한 분 중 한 분이 했다. 오만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방자하고 잘난 체하여 건방지다.'라고 한다. 세상사를 사노라면 거죽은 인간이나 속이 인간이 아닌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난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른다. 바보처럼 무작정 참아낸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비굴하게 참아내고 마는지, 괜한 경단녀의 직장 복귀 후유증이라고 급하게 포장하고 만다.
모든 물질은 분해하여 분석하면 구성 성분을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인간의 성정은 캐도 캐도 그 구성 성분을 다 알 수가 없다. 누적된 데이터로는 인간은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하니 그게 더 문제다. 못된 성정으로 음주 운전하듯 애꿎은 선량한 생사람 해하는 걸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면서도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니 그게 더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이를 묵묵히 참아내면서 묵인하는 나 같은 이도 문제라면 문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직장생활에서는 자신에게 돌아올 후유증을 무서워서 피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듯 더러워서 피했다고 한다.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사는 내가 안쓰럽다. 나도 돌보지 못하는 내가 주제넘게 한 마디 하자면 가능하면 다니던 직장은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 경단녀 된 후 어렵게 눈높이를 확 낮춰서 재 취업하여 명퇴도 못하고 참는 것 일색인 직장생활을 해낼 자신이 없다면 경단녀가 되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처지의 모든 분들께 "파이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