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키고 싶은 걸 위하여
불공평, 불합리함, 희생
by young long May 15. 2023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 그걸 부정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불공평하고 부적절하고 불합리함에도 나 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나를 누루고 산다.
그러나 그게 맞는지는 늘 의문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참아내고 또 참아내면서 살아야 하나 싶다.
그게 과연 인생인가,
간혹 참아내는 이가 있어서 그 상대가 같은 짓을 하고 또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드라마에서나 그런 몹쓸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드라마도 현실을 취재하여 만들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큰언니 세대, 또 우리의 어머니 세대에는 참 많이 불공평했다.
그분들의 희생 없이는 지금의 우리 세대가 누리는 풍요로움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해도 과하지 않다.
물론 독일을 간 간호사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우디를 간 아버지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아들은 대학을 보내고 딸은 아들의 학비를 벌어서 보탰으니 여자들의 희생이 더 많았었던 건 보통의 경우였다. 가난이라는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그런 과정 중에 일방적 부의 편취가 있었고 그런 부적절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피 흘리는 시간들이 있었다.
다양한 과정을 겪어온 후 현재는 부가 상향평균화되었다는 생각이다.
그 결과로 여러 측면에서 평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덕분에 의식의 평등이 실재하기 시작했다.
간혹 본인들이 살아왔던 삶의 형태를 아래세대에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래세대들은 단호히 거부한다.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요구를 할 경우 분명하고 단호하게 표현한다.
중간 세대들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표현을 못하면서 아래세대의 출현을 기대한다.
희생, 평등 이 두 가지는 공존하기 힘든 단어다.
전업주부의 세대에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하겠다는 여성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슈퍼우먼이 등장했고 맞벌이와 가사를 전담한 여성들의 희생으로 가정이 유지되었다.
그러다 요즘은 맞벌이는 필수고 가사도 동등하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성도 남성도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둘 다 잘할 수는 없다는 판단으로 결혼을 포기하는 분위기다.
본인이 희생할 생각도 없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희생하라고도 하기 싫은 결과라는 생각이다.
너무 분별력 있고 영민한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인간이 멸종될 위기의 상황이 발생할 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시대의 변천과정이나 인간의 멸종 위기 상황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불공평하고 불합리하였으나 그 과정 속에서 감래하고 희생하였던 이들 덕분에 그나마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식물도 장미처럼 가시가 있는 식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식물이 있다.
사람도 원래의 성정이 가시가 있는 성정을 타고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는 생각이다.
하루를 살다 보면 가끔 가시에 찔린다.
피를 흘리고 아파하면서도 다음날도 또 그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아픔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이겨낸다.
굳은살이 생겨서 버텨냈지만 그렇게라도 살아낸 스스로에게 조금은 미안해한다.
알고 보면 인생이 유지된다는 건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더 지키고 싶은 걸 위하여 기꺼이 나의 부재까지도 자처한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