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래도 누군가가 들어주는 이가 있어야 '그렇지, 그래!' 하면서 움직였더니 변화가 있다고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강력하게 주장하여 들어줄지 여부를 확답을 듣지 못한 채 끝이 났었던 일이 있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인들이 자체 회의 결과 결정한 날부터 들어주고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래서 무슨 그런 경우가 있냐고 출시될 때 불량이었는데 자체적으로 그 불량을 고쳐주자고 결정한 날부터 고쳐주고 그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었다.
그러자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게 있었다.
기존에 입력된 수많은 자료를 삭제하고 새로 다시 입력하면 원하는 대로 고쳐주겠다고 했다.
이유는 현재는 자체적으로 고쳐주기로 한 그날 이후이니 가능하다는 거였다.
절름발이로 살면 살았지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함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더 바쁜 일이 있어서 우선 그 일을 못하다가 오늘 들어가 보았더니 실제로 원했던 대로 시스템이 모두 변경되어 있는 걸 확인하여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그냥 은은하게 미소가 번지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
최근에 사용자가 원해서라기보다 그냥 주최 측의 의지인지 계획인지 여하 간에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익숙한 게 편하고 좋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싹 다 갈아엎었다.
월 단위로 시간을 다투면서 해야 하는 업무라 바뀐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까지 덜커덩거려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방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별 소득이 없어서 시스템이고 뭐고 없던 시절처럼 급한불을 끄는 식의 업무를 처리했다. 그런 후 앞으로 계속 그놈의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 관계로 상담사가 수두룩한 곳에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전화를 할 때마다 다른 분이 받는 걸 보면 여러 명인 게 분명한데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질의응답란에 문의하세요. 그런데 질의 내용이 많아서 답변이 좀 오래 걸릴 거예요."라고 말했다.
고작 그 말을 하려고 그렇게 수두룩하게 많은 분들을 배치해 뒀나 굳이, 자동응답기로 답을 하도록 하면 될 말을.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고, 더 느려지면 또 다음 달 업무도 차질이 있을 것이 염려되고 여하 간에 단판을 지어야겠다는 작심을 하고 한 상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질의응답 코너에 문의하라고 하면 상담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질의를 대신해서라도 하루빨리 되도록 도와야 하는 게 업무가 아닌가요?"그렇게 말했더니 다음날 시스템을 갈아엎어달라고 요청한 핵심부서에서 내게 전화를 해왔다.
도움을 요청한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질문을 알아보겠다더니 그다음 날 그 시스템을 개발한 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질문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
개발 초기라 불안정해서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하면서 자체적으로 회의를 해서 고쳐주기로 결정했던 날 이후의 경우는 모두 고쳐주었다면서 나의 경우는 그 결정 전에 일어난 일이라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불량품인지 뻔히 알면서 수리 여부를 본인들이 결정한 날 이전 이후로 고쳐주고 말고 한다는것이었다.당장엔 안될 것처럼 말했어도 말도 안 되는 설명에 항변을 한 말이 그래도 일리가 있었던지 쓰윽 요청 대로 수리를 해주어서 고맙고 기뻤다.
요즘 그래도 머리 터지도록 복잡한 직장생활이 슬그머니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순수한 업무도 잘 해결돼서도 그렇고 고구마 같던 상사와의 관계도 정면승부해서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것도 한몫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그래도 덜 공허하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아이 셋을 포함해서 다섯 식구가 한집에서 살던 때엔 한 사람 한 사람 무얼 원하고 있는지 살피고 말하기 전에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내 임무로 알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 집 하나씩을 차지하고 산다.
요즘은 그저 간간이 식사에 도움이 될만한 걸 택배로 보내는 게 전부다.
온 집안이 텅텅 비었다.
날마다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았었던지 쉴틈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이런 때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이런 때 직장이라도 안 다녔다면 어쩔뻔했나 싶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안될 것처럼 하던 일이 요청대로 다 이루어지고, 사람에 대한 회의가 느껴질 일들도 있다가 사그라들기도 하면서 기복 많은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사는 직장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한다.
생의 주기상 바람 한 점 없는 망망대해에서 날마다 둥둥 떠있는 것 같은 시기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직장이란 곳에서 지지고 볶고 할 수 없었다면 아마도 깊은 우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심오한 탐구가 가능한 사람도 아니고 날마다 그날이 그날 같았을 것이 예측되는데 그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요 속에 풍덩 빠져있는 나는 누군가가 안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 들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참 이럴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당해야만 하는 침묵 앞에서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면서 언젠가는 경청에 대한 갈증보다 침묵을 달콤하게 생각할 날들도 다가올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