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오일장 생선도 아니고 나이를 깎아주는 세상을 만나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매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 심하게 거부감을 느끼는데 그새 오자와 친해져 버렸다.
주변에 이미 육자를 달아버린 분도 있고 별 표현은 안 하지만 육자 바로 앞에 계셨던 분도 있다.
거부하고 싶은 나이 앞에서 해가 바뀌었는데 실감하기 힘든 '환생인가?' 싶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십의 중반까지 오면서 참 별별일들을 다 마주하곤 하였다.
빈곤의 시대를 거쳐서 이만큼 살게 되자 의식도 함께 성장해서 내면의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좋은 조짐만 있는 게 아니라 묘한 일들이 돌연변이처럼 생겨나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이라는 뜻을 갖은 '혁신[革新]'이라는 단어가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단어 앞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뭔가를 하는 것 같은지 그 단어를 한약의 감초처럼 붙인다.
어떤 조직이든 주가 있고 부가 있을 수가 있다.
그 '혁신'이란 단어를 '주'를 위한 막무가내식 '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틀을 짜서 운영하는 게 진정한 '혁신'이라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 한정된 상황 속에서 어느 한쪽의 편리를 위해서 속력을 내다보면 다른 한쪽이 불편하고 불합리한 일을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달리 말하자면 '풍선효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본인들이 '주'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은 당장 편리하니까 누군가가 느껴야 할 불합리함을 의식적으로 의식하려들지 않는다.
그냥 방관하려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변화를 '혁신'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뭔가 획기적인 개혁이라도 해낸 것처럼 확성기를 강력하게 틀어댄다.
새로울 것도 없고 본인들의 일을 더 약한 사람들에게 떠미는 형국이니 '혁신'의 반대말인 상황인데 그걸 '혁신'이라고 이름 붙여버리고 또 업적이라도 이룬 것처럼 홍보한다.
한참 개발의 붐이 일던 시절 업주의 횡포를 당한 척박한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처럼 조직의 '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몇 번 바뀐 이 시국에 그때와 다를 것 없는 상황 속에 살고 있다.
'주'의 필요에 의해 원치 않지만 떠맡겨버리는 것까지는 그래도 '참, 못됐다.'이런 마음으로 긴 한숨 한번 쉬면 그만이라고 치자. 원컨대 '혁신'이라는 단어는 남용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이만큼 살다 보니 어찌 되었든 세상은 그래도 살만해졌다.
때에 따라선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기도 하고, 빈부의 격차는 있을지언정 적절하게 누릴 수 있는 상태가 되어가서인지 진정한 평등도 봄날 새싹 돋듯이 돋아나고 있다.
이기적인 행동을 '혁신'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래도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불합리하다는 걸 알고는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어느 때가 되면 뭐든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걸 오십 년 세월 속에 변화했던 것들을 목격했으니까 믿고 기다릴 작정이다. 부디 그 우둔한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