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이 두렵지 않다.

소중한 것들

by young long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자식'이라고 답할 것이다. 무조건. 그다음으로 소중한 건 '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답할 것 같다. 그 소중한 것 중에 '나'를 지금도 존재하게 한 게 있다. 그건 나의 직장생활이다. 나의 직장생활이 뭐 큰 삶의 활력이거나 우리 가계를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거나 그러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를 지금도 존재하게 한 게 직장이었다는 건 나만의 비밀스러운 판단이다.


한두해 전에 엄마를 자매 간에 당번을 정해서 간병해야 되지 않느냐 그런 의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저런 의견이 분분할 때 자매 중에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를 케어해라, 네가 너희 집의 주 수입원도 아니잖냐."라고 , 맞는 말이다. 내가 주 수입원이 아니다. 그러나 나 혼자 삼킨 말이 있었다. '나를 살린 게 그래도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내가 살았다.' 누구도 모르는 사실을 나 혼자 다시 되뇌어보았다.


중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생존을 위해 큰 수술을 해야 했었다. 과정상 몇 번의 수술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몇 번의 수술을 했어야 했다. 수술 후 얼마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에 온 첫날 우연히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첫마디가 "뭔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면서야."였다. 수술 후유증으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는데 말문이 막혀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아주 먼 남도 걱정하고 위로하는 병을 얻은 사람에게 집에 전화를 할 정도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생명을 위협하는 큰 병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한동안 남편에게도 그런 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심신이 말할 수 없이 허약해진 상태라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스스로 해답을 찾은 게 '그래도 내 병원비는 내가 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내가 직장을 안 다녀서 정말로 내 병원비도 못 벌었다면 난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내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만 오십에 얻은 병이니 오십을 살도록 어떻게 살았기에 그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말할 수 없는 자괴감에 몸부림치다가 정말로 병원비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겨우 수술에 수술로 생명을 건져서 집에 오자마자 저세상맛을 보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서 힘들어했었다. 적은 수입원인 직장생활이 나를 살리는구나! 고맙구나! 그런 직장을 속도 모르고 엄마 병간호 한다고 주 수입원이니 아니니 하면서 그만두라니?!, 날 살린 게 그 직장인데.


고맙고 고마운 직장이다. 그 일뿐만 아니라 막내가 중학교 입학하자 얻은 이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누구보다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조금씩 시간을 내서 꾸준히 무언가를 배웠었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자 어느 때쯤엔 생산적인 일이 하고 싶어 졌었다. 쉽게 말해서 돈을 쓰는 거 말고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어 졌었다.


그러던 차에 얻은 직장이다. 돈을 버는 것도 버는 거지만 사회에 필요한 일원이 된 것 같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아이 셋다 대학을 진학하고부터 찾아온 공허함을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역할을 한 것도 직장생활이었다. 그런 직장생활이 몇 년 남지 않았다. 막상 그때가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마음으로는 섭섭 보다는 시원한 마음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직장생활이 많이 힘들다거나 뭐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한이 없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짐작컨데 대부분 본능적으로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듯이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그다음을 준비하게 되지 않나 싶다. 그런 요즘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새싹이 트는 것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졌다. 새싹이 트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텃밭에 새싹이 트는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화분을 하나하나 늘려가면서 새싹이 돋는 과정을 시시때때로 관찰하고 큰 기쁨으로 삼고 살고 있다. 퇴직을 준비하는 건지 노화로 쇄락해져 가는 기운을 보강하는 건지 둘 다 인 것만 같은 생각을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찾았다는 안도를 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얼른 수락하듯이 다가오는 변화에 대해 기쁘게 받아들일 작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를 위해 집중할 계획이다. 최대한 내게 자유를 줄 생각이다. 그 수많은 사회 규범이나 통념 그 이상의 나를 가두는 행동 등은 이제 그만할 생각이다. 새싹이 움트고 쑥쑥 자라는 걸 보고 또 보고 지낼 것이다. 어느 날은 하염없이 멍 때리고 몇 시인지 며칠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살 것이다. 그때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하고 살 것이다. 오는 시간을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이다. 양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