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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23. 2023

알만도 한데

마음, 판단력, 안목

  알만도 한데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지천명이 괜한 말이 아닐 거라는 생각 때문에 오십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오십이 넘고부터는 뭔가 더 잘 알 것 같고 없던 지혜도 생기고 살아온 경험치가 있으니 작은 암시에도 쉽게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이 겉만 멀쩡한 사람들을 내 주위에 등장시키는 일들이 왕왕 생긴다. 갈수록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나빠진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상대의 본색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제오늘 '나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할 일들이 좀 생겼다. 오늘은 그래도 어느 정도 예측할만한 상대였기에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제 일은 두꺼운 콩꺼풀이 제대로 벗겨지는 일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절친이라고 부를 만큼의 관계인 이들이 본심을 보이는 행동을 했다. 그렇게 어마무시한 희생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절친이 아니고도 충분히 마음 써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공식적인 절친 두 사람이 이유 핑계를 아주 열심히 말하면서 외면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역으로 참 감사할만한 날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씻고 나면 없어질 파운데이션 같은 친구를 겉모습만 보고 친구라고 붙잡고 있었을 것을 어제의 일로 '아, 친구가 아니었구나!'라고 느끼도록 해줬으니 둔하디 둔한 눈을 뜨게 한 감사한 날이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또 물러터진 나는 시간이 흐르면 그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겠지만 어쨌든 친구라고 하기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한 그들도 어느 정도는 본인들의 본모습이 어떻게 비쳤을지 조금은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오늘 실망스러운 행동을 보인 사람들 덕분에 거의 11년 차 아무 내색 없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무한한 감사를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 고마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고만 살았던 나와 다른 친구를 야속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제오늘 짧은 시간을 좀 불편하다는 생각에서 배려하지 않은 겉만 친구인 사람을 친구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정작 11년이란 그 많은 시간을 아무 불평불만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고마운 행동을 한 친구를 뒤늦게 그녀가 진짜 친구였다는 걸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알만도 한데 어쩌면 그렇게 우둔했을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어제 같은 미션을 주고 내 눈앞에서 아닌 행동을 한 걸 보여주면서 그들이 친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했을까? 어제 뿐만 아니라 그중 한 명은 지난해에 내게 정확한 배신행위를 했었다. 짧지만 몇 달간 한 몸처럼 지냈는데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나를 향해 배신행위를 했었다. 그러고도 또 절친처럼 살았었다.


살아온 세월이 무색할 만큼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신은 내게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이도록 미션을 줬을까 싶다. 부디 손에 쥐어 준 걸 또 잊고 바보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


주위에 그들 같은 좀 많이 아쉬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혈육이 아닌데도 창고 열쇠를 맡길 만큼 든든한 사람도 있고 돌아보면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그래도 있다. 11년간 묵묵히 봉사해 주고 배려해 준 분도 있고 어쩌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어제오늘 뜻밖의 수확이라고 할만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고개를 돌리고 싶은 상황임에도 의연하게 더 못 볼걸 보기 전에 스스로 명쾌하게 나를 당당히 세울 줄 아는 행동을 한 내게 약간의 위로를 하고 싶다. 아직 많이 사람 보는 눈은 없어도 그래도 스스로를 곤두박질치게 두지 않고 바로 서게 하는 정신은 있다고 생각되어 그나마 다행이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하려 애썼다. 그 1mm도 안 되는 배려, 그거면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훈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참 많이 아쉽다. 언 듯 결혼할 상대를 사귈 땐 그래도 사계절을 살아봐야 된다는 말이 있듯이 친구를 사귈 때도 평범한 상황이 아닌 특별한 상황에서의 모습을 겪어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알만도 한데 알지 못한다고 자책만 할게 아니라 진짜 친구를 얻으려면 어제오늘 같은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도 겪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탓이나 나이 기대를 할 게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건 늘 유동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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