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조금 경솔했다고 생각되거나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쯤은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기 미화인지 스스로에 이롭도록 왜곡시키고 있는지 지극히 주관적이라 스스로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가 성하던 어느 해 추석의 일이다. 평년에도 지척에 친정이 있는데 시댁에서 명절준비를 하고 내 부모님 조상님을 위해서는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는 결혼한 여자의 비애를 절절히 느끼면서 많은 세월을 보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금지령이 내려서 명절에 집결하는 걸 못하게 되어 공식적으로 시댁엘 가지 않아도 됐었다. 물론 남편은 시댁엘 갔었다.
늘 마음 쓰였는데 공식적으로 시댁엘 가지 않아도 되는지라 명절에 나 홀로 친정엘 갔다. 아무 연락 없이 서프라이즈처럼 나타나고 싶었었다. 엄마와 동생은 명절 준비에 분주했다. 어쨌든 나는 너무나 신났었다. 결혼 전처럼 우리 집에서 명절을 보낼 수 있는 그 자체가 한가위 달처럼 만복감을 느꼈었고 행복에 들떠서 싱글벙글하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내 마음과는 딴판으로 동생이 시종일관 날이 서있었다. 내가 아는 동생은 그 누구보다 효심이 남달랐고 엄마의 손발이 되어주었다. 그런 동생이 내 눈앞에서 내가 아는 동생이 맞나, 왜 저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었다.
몸을 겨우 가누시는 엄마는 부엌에서 자잘하게 움직이시면서 동생에게 "그럴 거면 오지 마라."를 서너 번 하셨다. 엄마에게 불손하게 행동하는 동생을 처음 보는 나는 나만 몰랐었나, 매번 저랬었나,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명절인데 이웃에 폐가 될 것 같고 엄마 보시기에도 아닌 것 같아서 꾹 참고 지켜보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점심을 셋이서 먹게 되었다. 밥상머리에서는 평범하고 차분하게까지 느껴지게 동생이 엄마에게 말을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엄마에게 말씀드릴 땐 지금처럼 말을 해라."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동생이 갑자기 날카롭게 "네가 해라."라고 말했다. 내가 한 말과 맥락이 맞지 않게 불쑥 이게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말할 수 없이 거슬리는 동생의 언행에 참을 수 없었으나 참았다.
엄마 앞에서 동생과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안간힘을 다해 참다가 동생과 나란히 버스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이 싫어할 최상의 말을 최선을 다해 이 말저말 몽땅하고 그래도 풀리지 않아서 뭐라고 했는지 생각도 안나는 온갖 말을 분출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엄마한테 한 불손한 동생의 태도를 씻을 수 없었고 뜻밖의 내게 한 한마디가 그간 동생을 남달리 애정했던 내게 우주공간의 이름 모를 행성이 박살 나는 것 이상의 파괴력이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을 쏟아내고도 풀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한 행동은 엄마를 향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였고 내게 한 배신행위 같은 동생의 말 한마디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동생이 엄마에게 내가 동생에게 했던 말을 전했던 모양이었다. 근본적으로 엄마를 위해 동생에게 야단을 심하게 쳤는데 엄마는 내가 동생에게 한 표면적인 말만 듣고 몹시 언짢으셨던지 "널 많이 믿고 의지했다. 그런데 네가 그럴지 몰랐다."라고 말씀하셨다. 뜻밖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오랫동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난 내 동생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러고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엄마는 약한 동생을 무조건 비호하셨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럴까 싶기도 하면서 엄마를 향해 불손하게 행동하는 동생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나는 그냥 많이 무안하고 쓸쓸했다. 같은 상황이 발생했어도 난 어쩌면 같은 행동을 할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세상에 없는 맛을 느낄지라도.
좀 많이 이해하기 힘든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엄지발가락이 무지외반증인 것처럼 확 꺾여있는 것도 꼭 엄마를 닮았다. 입이 살짝 나온 것도 엄마를 닮았다. 얼굴도 딱 엄마를 닮았다. 어쩌면 성정도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래도 깊고 넓으면서 강직한 엄마의 마음을 닮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런 나는 얼마 전 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찾아뵙고 "엄마, 우리 애들이 할머니에게 음식 만드는 걸 그렇게 배우라고 했는데 못 배웠어도 김장을 했는데 엄마 닮아서 엄청 맛있게 담았어요. 그래서 동생에게도 보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말씀은 못하시고 듣기만 하시는 엄마는 눈빛으로 흐뭇해하셨다.
텃밭을 일구는 나를 보고 언젠가 형부가 그랬다. 딱 장모님 같다고. 그래서 난 "저는 우리 엄마와 같은 게 좋은데요."라고 말했다. 사노라면 덜컹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아실 거다 셋째가 엄마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