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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22. 2023

발가락이 닮았다.

모녀

  누구나 조금 경솔했다고 생각되거나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쯤은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기 미화인지 스스로에 이롭도록 왜곡시키고 있는지 지극히 주관적이라 스스로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가 성하던 어느 해 추석의 일이다. 평년에도 지척에 친정이 있는데 시댁에서 명절준비를 하고 내 부모님 조상님을 위해서는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는 결혼한 여자의 비애를 절절히 느끼면서 많은 세월을 보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금지령이 내려서 명절에 집결하는 걸 못하게 되어 공식적으로 시댁엘 가지 않아도 됐었다. 물론 남편은 시댁엘 갔었다.


늘 마음 쓰였는데 공식적으로 시댁엘 가지 않아도 되는지라 명절에 나 홀로 친정엘 갔다. 아무 연락 없이 서프라이즈처럼 나타나고 싶었었다. 엄마와 동생은 명절 준비에 분주했다. 어쨌든 나는 너무나 신났었다. 결혼 전처럼 우리 집에서 명절을 보낼 수 있는 그 자체가 한가위 달처럼 만복감을 느꼈었고 행복에 들떠서 싱글벙글하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내 마음과는 딴판으로 동생이 시종일관 날이 서있었다. 내가 아는 동생은 그 누구보다 효심이 남달랐고 엄마의 손발이 되어주었다. 그런 동생이 내 눈앞에서 내가 아는 동생이 맞나, 왜 저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었다. 


몸을 겨우 가누시는 엄마는 부엌에서 자잘하게 움직이시면서 동생에게 "그럴 거면 오지 마라."를 서너 번 하셨다. 엄마에게 불손하게 행동하는 동생을 처음 보는 나는 나만 몰랐었나, 매번 저랬었나,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명절인데 이웃에 폐가 될 것 같고 엄마 보시기에도 아닌 것 같아서 꾹 참고 지켜보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점심을 셋이서 먹게 되었다. 밥상머리에서는 평범하고 차분하게까지 느껴지게 동생이 엄마에게 말을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엄마에게 말씀드릴 땐 지금처럼 말을 해라."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동생이 갑자기 날카롭게 "네가 해라."라고 말했다. 내가 한 말과 맥락이 맞지 않게 불쑥 이게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말할 수 없이 거슬리는 동생의 언행에 참을 수 없었으나 참았다.


엄마 앞에서 동생과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안간힘을 다해 참다가 동생과 나란히 버스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이 싫어할 최상의 말을 최선을 다해 이 말저말 몽땅하고 그래도 풀리지 않아서 뭐라고 했는지 생각도 안나는 온갖 말을 분출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엄마한테 한 불손한 동생의 태도를 씻을 수 없었고 뜻밖의 내게 한 한마디가 그간 동생을 남달리 애정했던 내게 우주공간의 이름 모를 행성이 박살 나는 것 이상의 파괴력이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을 쏟아내고도 풀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한 행동은 엄마를 향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였고 내게 한 배신행위 같은 동생의 말 한마디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동생이 엄마에게 내가 동생에게 했던 말을 전했던 모양이었다. 근본적으로 엄마를 위해 동생에게 야단을 심하게 쳤는데 엄마는 내가 동생에게 한 표면적인 말만 듣고 몹시 언짢으셨던지 "널 많이 믿고 의지했다. 그런데 네가 그럴지 몰랐다."라고 말씀하셨다. 뜻밖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오랫동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난 내 동생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러고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엄마는 약한 동생을 무조건 비호하셨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럴까 싶기도 하면서 엄마를 향해 불손하게 행동하는 동생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나는 그냥 많이 무안하고 쓸쓸했다. 같은 상황이 발생했어도 난 어쩌면 같은 행동을 할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세상에 없는 맛을 느낄지라도.


좀 많이 이해하기 힘든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엄지발가락이 무지외반증인 것처럼 확 꺾여있는 것도 꼭 엄마를 닮았다. 입이 살짝 나온 것도 엄마를 닮았다. 얼굴도 딱 엄마를 닮았다. 어쩌면 성정도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래도 깊고 넓으면서 강직한 엄마의 마음을 닮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런 나는 얼마 전 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찾아뵙고 "엄마, 우리 애들이 할머니에게 음식 만드는 걸 그렇게 배우라고 했는데 못 배웠어도 김장을 했는데 엄마 닮아서 엄청 맛있게 담았어요. 그래서 동생에게도 보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말씀은 못하시고 듣기만 하시는 엄마는 눈빛으로 흐뭇해하셨다.


텃밭을 일구는 나를 보고 언젠가 형부가 그랬다. 딱 장모님 같다고. 그래서 난 "저는 우리 엄마와 같은 게 좋은데요."라고 말했다. 사노라면 덜컹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아실 거다 셋째가 엄마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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