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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20. 2023

안전운행

인생

  아픈 한 주였다. 하겠다는 결정을 하면 몸이 아프더라도 하고 만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심하게 일을 하고 좀 쉬어야 했는데 직장에서도 기한 내에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픈 게 더 아프게 되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일을 했다. 기한 내에 해결하고 병가를 내고 쉬었다. 아픈데도 또 엄마 병원에 면회를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다녀왔다. 얼마나 아팠던지 통증 때문에 자다가도 깼었다. 다행히 한의사인 큰아이가 약침과 부항등 한방치료를 해줘서 조금은 진정 국면에 놓였지만 또 일상을 해결하려면 움직여야 하니 쉽지 않다.


생활을 하다 보면 이렇게 자잘하게 좀 힘들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고 때론 너무 힘들어서 빨리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때도 있으면서 살아낸다. 대체로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은 찰나고 무맛인 시간들도 제법 있고 그리고 많이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로 삶은 이어지는 것 같다.


사주에 초년이 많이 힘들다고 나왔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농촌에서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 가가호호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워낙 감수성이 남달라서 자연으로부터 느꼈던 많은 감동들이 생활의 어려움쯤은 희석시키고도 남았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의 수많은 놀이들도 그 시대에 느꼈을 어려움쯤은 덮고도 남을 만큼 찬란했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나의 십 대는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지내놓고 보면 지난 시간들은 그렇게 많이 미화되거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한다. 단순히 미화나 포장이 아니라 알고 보면 힘든 상황에서도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에 그래도 평탄한 나이테가 그려졌다고 본다. 또한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다.


역동의 시간을 지낼 때는 많은 선택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들을 뒤로하고 어느 중턱쯤에서 되돌아보니 모양은 조금 달랐을지라도 그 내면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뭐든 마음먹으면 죽기 살기로 하는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러했을 것이고 한번 한말은 목숨처럼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란 사람은 어김없이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거다.


자아도취의 아이콘인가, 초긍정의 심벌인가, 내 삶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나란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안전 운행하는 나를 나는 신뢰한다.


내 마음속에 든든한 내 부모님이 계시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든든하고 안전한 부모가 되고 싶었다. 적어도 내 남편이자 아이들 아빠는 내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좋겠다. 좋은 아빠가 계셔서."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도 내가 한 말을 공감하고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아이들 아빠가 되어준 남편이 고맙다.


아이들 아빠는 아이들에게 지시적이거나 훈육을 빌미로 말로 어떻게 해야 된다고 표현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혹여 그럴 기미가 보이면 내가 얼른 대신했었다. 왜냐하면 훈육은 엄마인 나 하나로 족하고 아빠는 그들의 산소통 역할을 해주길 원했었다. 물론 남편의 성향 자체가 아이들에게 지시적이지 않은 면도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산소통이 되어주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한참 학업으로 바빴을 때 아이들 아빠는 집옆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두세 시간씩 운동을 했었다. 집에 있는 야구 축구 농구 배드민턴 줄넘기 등 온갖 도구를 가지고 딱 두 시간만 운동하고 온다고 하고 나가서 세 시간 이상을 뛰고 왔었다. 거의 주에 두세 번을 꾸준히 그렇게 보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숨 쉴 수 있는 산소통 역할을 하는 남편이 좋은 아빠로 보였다.


아내인 내 입장에서는 다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열공해야 한다는 내 교육관과 다르게 본인의 성장기를 들추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선 공부하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라고 말하면서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었다. 어느 부모가 스스로 하는 자식을 싫다고 하겠는가, 애어른 할 것 없이 작심삼일이 현실이니 부모로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필요한데 그런 실천을 한 내게 제동을 건 건 좀 쉽지 않았었다. 결국 결과를 보고 "엄마 덕분이다."라고 말해준 것 때문에 눈 녹듯이 녹았었지만 말이다.   


삶을 너무 안전운행에 포커스를 맞춰서 살다 보면 한 번쯤 모험도 하고 싶고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되곤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많은 선택의 기회 앞에서 습관적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예측하곤 하는 건 변화나 발전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더 많은 희생을 감래 하는 걸 두려워해서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그 희생이 혼자만의 희생이 아니라 배우자, 자식들이 함께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동반자로서 내 남편이자 아이들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란성쌍생아도 다른데 다 같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지만 가장으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정년을 코앞에 둔 남편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다. 남은 여생 동안도 안전한 둥지가 되어주고 싶다. 무엇보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따뜻한 고향이 되어주고 싶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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