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마음과 몸은 공생관계다. 몸이 아프면 마음을 많이 쓴다. 손발을 움직여서 몸을 돌보게 하는 건 알고 보면 마음이다. 마음을 얼마나 극진하게 쓰는가에 따라 몸의 회복속도가 달라진다. 몸만 마음의 수혜자냐,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을 거의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녹초가 되도록 죽을힘을 다해 몸을 움직여서 해내곤 한다. 마음을 위해 몸이 희생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마음 편하자고 몸을 행동하게 하는 경우가 반복되면 그 누적된 데이터가 바로 성격이 된다. 보통사람들의 경우 시나브로 해내는 일들을 난 좀 다르게 접근한다. 뭔가 할 일이 있는데 안 하고 두면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그냥 좀 불편한 정도가 아니고 그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전까지는 계속 안 하고 지내는 시간 동안의 시간이 내 시간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빨리 해버리고 나머지 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드는 게 나를 위하는 길이다. 그냥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라 늘 그렇다.
마음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몸을 심하게 혹사시키는 게 내 삶의 패턴이다. 사람들 중에 맛있는 걸 먼저 먹는 사람이 있고 덜 맛있는 걸 먼저 먹고 맛있는 걸 아끼다가 나중에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대부분 보는 사람 마음대로 판단해서 먼저 먹는 걸 보면 좋아해서 먼저 먹는 줄 알고 더 권하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면 좋아하거나 잘한다고 생각해서 더 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단지 빨리 할 일을 하고 마음 편해지려고 그러는데 그걸 모르고 그렇게 판단한다.
줄 세워서 예방주사를 맞을 때도 대부분 겁나고 무서워서 먼저 맞기를 꺼린다. 그러나 난 거의 제일 먼저 주사를 맞곤 했다. 어차피 맞아야 된다면 긴 시간 떨고 있기 싫어서 먼저 맞았다. 어려서부터 그 누구도 그러지 않는데 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무서워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힘든 상황에 취약했다. 거의 같은 맥락으로 난 해야 될 일 앞에서 바위에 눌린 것 같은 불편함을 더 많이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닥치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한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고 판단했을 때.
한 삼 년째 텃밭일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텃밭을 하고 계시던 분이 한동안 너무 열심히 하는 나를 보고 욕심이 많다고 핀잔을 줬다. 쭉 지켜보시다가 최근에야 내 성향을 파악하고 아플까 싶다고 쉬엄쉬엄 하라고 단속하기 시작했다. 할 일이 있으면 많이 불편하다. 그래서 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한다. 해야 될 일에 눌려서 죽기 전에 빨리 해결하고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열심히 한다. 그런데 텃밭일은 진짜로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길 정도로 할 일이 계속 생긴다. 텃밭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 너무 힘들게 일하고 보니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과로사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이르자 잠시 고민도 해보았다. 이걸 계속할 건지.
매사에 할 일 앞에서 난 마음 편안한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몸이 고생이 많다. 어제 그제 이틀간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못할 양의 일을 했다. 갑자기 김장을 해야겠다고 토요일 아침에 생각을 했다. 집 앞 마트에서 배추를 사서 간했다. 마트를 세 번 오가며 김장 재료들을 사 왔다. 바로 그간 물에 담가뒀던 김치통을 씻어두고 텃밭엘 가서 필요한 재료를 체취해왔다. 토요일엔 간해둔 배추를 씻어서 물을 빼두고 마늘 세 접을 다음날 새벽까지 까고 쪽파 갓 부추 등을 다듬어서 씻어두었다.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넣어 다시물을 끓여 두고 찹쌀죽을 쒀뒀다.
쪽잠을 잠시 자고 난 일요일 새벽 온갖 채소를 채를 썰었다. 20가지가 넘는 재료를 혼합해서 배추양념소를 만들었다. 물 빠진 배추를 김치를 담그다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앞 마트가 문을 닫아서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겨우 배추를 더 사서 다시 간했다. 남편 아이들 셋 그리고 동생에게 보내줄 10여 개가 넘는 반찬통을 사서 씻어서 김치를 담갔다. 일이 있어서 본가에 간 남편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자고 하였으나 그냥 이 모든 걸 혼자 했다. 단지 내 마음이 어차피 할 일이라고 판단해 버려서 불도저처럼 해냈다.
출근하고 생전 처음 느끼는 통증을 느끼면서 일을 하다가 퇴근길에 마트를 들러 택배 보내는 편에 필요한 걸 더 챙겨서 박스 포장을 해뒀다. 내일 아침 택배사에서 가져갈 것이다. 쉬는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불현듯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 마음 때문에 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핍이 발전의 동력이 되고 불만이 창조의 씨앗이 되고 뭐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 때문에 몸이 무척 많이 고생일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걸까? 좀 멋있고 싶어서 이십 대에 죽기 살기로 일을 했었다. 스스로 일에 미쳐보는 게 멋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다. 사십 대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 또 치열했었다. 일생 훌륭하게 자식을 기르는 게 내 사명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반면에 특별한 동기나 목적 때문에 서라기보다 그냥 습관적으로 해야 될 일을 안 했을 경우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는 이유로 물불 가리지 않고 몸을 심하게 혹사시키면서 일을 해버리는 건 무슨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 억지로 미화시켜 보자면 열정일까? 젊은 날 남편이 내게 했던 칭찬 중에 결단력, 추진력이 있었다. 다 늙어서 마음을 해부해 보니 마음 편하자고 했던 행동들을 보고 속 모르는 남편이 그렇게 보았던 거였나 보다.
결국은 마음 편하자고 했던 모든 일들이 누적된 데이터가 되어 성격으로 굳어졌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성격, 그것 쉽게 고치기 힘들다. 노화로 몸은 병약해졌다. 반면에 무형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끝내 성격은 제갈길을 가버릴 것이다. 완급조절도 방향전환도 안 되는 굳어버린 성격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이게 문제다. 외관상 몸은 많이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정신건강 또한 중요하다. 성격 그것 쉽게 고치기 힘들다면 인정하고 마음 편안한 거 그건 바로 정신건강의 중요한 핵심 요소이니까 마음 편안하고자 하는 것 그것 하라고 둘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