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

by young long

창밖에 눈이 계속 내린다. 이제는 안 오나? 하고 보면 또 내리고 있다. 눈이 자꾸 내게 말을 시키는 것 같다. 도저히 침묵할 수 없어서 조용한 대화를 시도한다. "참 많이 예쁘구나!, 참 고맙고 반갑구나^^, 차분한 네 모습에 나까지 차분해지는구나!" 세상 예쁘게 내리는 눈에게 몇 마디 건넨다. 살포시 내리는 눈 덕분에 연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지막 달력의 끝자락에 서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잔잔한 기쁨도 있었고 여전한 걱정과도 동행하면서 유별나지 않게 그렇게 지냈다. 걷히지 않는 안개처럼 엄마 건강 걱정 그리고 언듯 언 듯 위협하는 나의 건강 걱정 그게 걱정의 주를 이루고 지극히 평범하게 해변의 파도처럼 가끔 크게 밀려오다가 잔잔하게 들락거리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살면서 특별한 깨우침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가끔씩 눈두덩이에 콩꺼풀이 씌여 있을 때마다 위기를 경험하게 하여 콩꺼풀을 벼껴버리는 기회를 갖게 되곤 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 번 콩꺼풀을 걷어내는 경험을 했었다. 늙는다는 건 오랫동안 쓴 농기구가 수리점을 들락거리듯 자주 병원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눈도 귀도 점점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을 보는 눈은 더욱 밝아져서 그간 몰랐던 본심들을 알아버린다. 씁쓸하지만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옥석을 알아보는 기회가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둔한 눈을 뜨게 해 줘서 다행스럽다고 다독이지만 내심 그냥 모른 채로 살았다면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눈비를 맞고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싹이 돋는다. 우리네 인생사도 자연의 흐름대로 시침 분침 초침을 계단식 러닝머신 삼아 돌고 돈다. 돌고 돌다가 많은 상처 다음의 흉터로 인해 이제는 새싹이 다시 돋을까 싶어진다. 인간사가 다 그럴까? 잃어버린 친구를 뒤로하고 아직 내게는 진짜 친구가 있다는 걸 위로삼고 살아간다. 유난히 확인해 버리는 일이 많았던 한해였었던 것 같다. 살포시 내리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모든 기억들도 잊어보려고 한다.


모든 건 알고 보면 내게서부터 출발한다.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났다는 건 다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빈구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어느 날의 책갈피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