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그저 뉴스일 뿐이고 누군가의 일이지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은 본가에 들러서 내일 집에 갈게~."라고 금요일 퇴근길에 남편이 전화로 말했다. 아무 걱정 없이 그냥 "응, 그래~."가 나의 대답이었다. 전날 잠을 설치기도 했었고 원래 초저녁이 고비라 비몽사몽 하는 중인데 밤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00 대학병원 응급실로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우엑~, 우엑."라고 하며 끊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이런 말을 듣지도 않고 끊었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허겁지겁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갈 준비를 했다.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는 찰나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이 그러는데 대학병원 응급실에 의사가 없대, 그냥 이곳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아버님이랑 같이 갈 테니 그렇게 알아. 그리고 전화하지 마."라고 했다. "운전하지 마, 119 안 부르려면 택시를 불러줄 테니까 택시를 타고 가, 휴대폰은 아버님 드리고."라고 당부했다.
90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스 시간표를 찾아보았다. 이미 버스 운행시간이 지났다. 찾아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과 허둥거리며 그래도 큰아이에게만이라도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 후 남편이 간다고 한 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했다. 남편 이름을 말하며 도착했는지 물었다. "환자와는 어떤 관계세요?", "배우자입니다.", "도착했습니다. 피검사, 소변검사 준비 중입니다."라고 했다.
그나마 무사히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걸 확인하고 있는데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가 옆구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하고 증상을 말씀하시는데 급성 신우신염 같아요.", "진짜?, 진짜야?, 그런데 왜, 구토를 그렇게 해?", "너무 중증일 땐 구토를 동반해요."라고 말했다. 검사 결과를 보거나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았더라도 한의사인 큰아이의 말을 듣고 그중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구토 증상에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황인 걸 봐서 뇌경색, 심근경색을 우려했던 터라 조금씩 긴장을 누그러트리게 되었다.
한참을 지나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링거를 꽂고 있다고. 진통제도 맞아서 많이 괜찮아졌다고. 검사결과는 아마도 요로결석인 것 같다고 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잠자라고. 휴~, 다행이었다.
통화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구토를 하는 남편을 멀리서 걱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악몽처럼 엄마가 쓰러지셨을 때가 떠올랐다. 뇌경색, 그 무시무시한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쩌나, 새하얗게 백지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119도 택시도 거부하면서 구토는 또 왜 그렇게 하는지, 멀리서 좌불안석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와중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니,, 아차 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꼈다.
요즘 뉴스에 계속 의사 증원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시각을 다투는 환자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하면서도 당장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제삼자의 시각으로 안타까워하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막상 남편이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가려는데 그곳에 근무하는 시누의 말이 의사가 없다고 하였다.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의 경우 결국은 대학병원을 찾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대학병원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니 그러면 그런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골든타임이 있을 정도로 생사를 가르는 위급한 환자는 어쩌란 말인가?
누구나 생업을 위해서는 모두 진심일 것이다. 권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러나 직업의 특성상 의사의 단체행동은 하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이나 다른 직종과는 다르게 남다른 고뇌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행동의 결과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일 거다. 금전을 잃어도 그 무엇을 잃어도 노력 여하에 따라 복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위급한 상황을 겪고서야 그 무거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생명이 담보된 이 상황이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