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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06. 2024

성격은 감기도 안 걸린다.

기대, 아픔, 외로움

  감기는 어쩔 수 없는 채류기간이 있다. 그냥 머물러 있기만 하지 않고 만만한 질환이 아니라 제대로 중병이라고 임팩트 있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오십이 되고서부터 겪는 감기다. 딱 죽을 맛이다. 겪는 사람은 죽을 맛인데 주변인들은 "응, 감기구나!"라고 다 아는 병이려니 하고 넘긴다. 그 와중에 성격은 감기도 안 걸리고 살아 있다.


알고 보면 쓰리잡이다. 주부고 직장인인 데다가 텃밭러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일주일 전 새벽에 텃밭의 영주 같은 분이 방앗간에 깻묵을 사러 본인이 같이 가주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 굳이 다른 날 가자는데 그냥 그날 가자고 해서 새벽 여섯 시에 방앗간엘 갔다. 그날은 친구 딸의 결혼식에 참여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그 새벽에 방앗간에 가서 족히 30kg은 되는 깻묵 세 가마니를 샀다. 그걸 그 새벽에 45도 각도의 50m 거리는 넘는 텃밭에 혼자 다 옮겼다. 딱 죽을 맛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멀미까지 해가며 발가락 풍선을 만들며 결혼식에 참여했었다.


그 후로 몸살을 동반한 감기가 걸린 걸 기침과 콧물을 확인하고 인지하게 되었다. 직장은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중요한 일처리를 해야 했다. 상부기관에 제출할 기일이 한참 남았는데도 그걸 처리해야 마음이 편하니 또 물불 안 가리고 덤볐다. 직장 상사께서 "얼굴이 많이 안 좋으신데요, 어디 아프세요?"라고 묻자. "감긴데요 몸이 지하로 계속 내려가는 것 같네요."그러고도 또 죽기 살기로 일을 했다.


집에 와서는 돌아오는 주말에 아버지 기일이라 남편과 함께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서 제를 지내야 하니 준비를 해야 했다. 먼저 남편 관사에 가져갈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한 음식을 시장을 봐서 만들고 준비해야 했다. 감기약을 먹고 일상을 바삐 지내는데 감기균이 전신을 점령해서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다. 눈은 푹 꺼져있고 얼굴은 잿빛이라 딱 강시와 다르지 않았다. 어제까지 그랬다.


오늘에야 조금은 정신이 들었다. 못 말리는 나는 죽어야 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보통사람의 경우 병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했을 상황인데 나란 사람은 왜 이러고 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스스로 불성실한 것 같은 나로 비치는 게 싫은 걸까? 나를 혹사시키는 내가 싫다. 좀 챙겨주고 아프면 눕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도 청하고 그럴 수는 없는 걸까?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살아 있는 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고야 만다.


죽어도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있으면 자청해서 도와야지 내가 요청하는 건 싫어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만 말할 수 없이 섭섭해한다. 직장상사가 "병가 내고 들어가셔요."라고 해주길 바란다. 남편이 "좀 쉬소, 내가 할게."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다. 삼십 년을 함께한 남편은 그럴 법도 한데 그간 무쇠처럼 꿋꿋하게 해낸 이력 때문에 묵묵히 일하면 당연히 할만해서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문제는 나다. 할 일 앞에선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상 해야 하는 성격이다.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게 사실이다. 아니, 뻔히 보이는데 도와주지 않는데 혹시 부탁했는데 불편해하면 그 뒷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 입을 떼지 못하는 게 맞는 말이다. 몸이 아픈데 마음까지 아프면 그걸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꾹 참고 죽기야 하겠나 싶게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내가 나를 돌볼 줄 모르는데 누가 나를 돌봐주겠나?라는 우문을 한다. 인간은 본시 외로운 존재인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외로움을 떨치려고 애쓰는데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외로운 존재인 거를 확인하게 된다.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홀로 외로운 건 당연한 거지만 군중 속의 외로움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외로움에 함락될 필요는 없다. 눈코입 손발처럼 외로움은 영 적인 인간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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