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장 관대한 것도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다. 나와 나를 분리할 수 없기에 가장 나의 비밀스러운 것을 나는 다 알고 있다. 그 가장 비밀스러운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누군가에게 발설하고 만다. 전제는 그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도 나의 비밀을 발설했는데 다른 누군가가 내 비밀을 지켜줄 리 만무하다. 어리석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게는 관대하고 다른 누군가를 향해선 상처니 배신이니 하는 단어를 머리에 뒀다 가슴에 품었다 한다. 출발은 자신이었다는 걸 망각하고 타인을 향해서 원인을 찾으려고 눈을 부라린다. 어쩌면 이런 게 삶이요 역사의 시작일지 모르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나로부터 시작되어 한 사람 두 사람 여러 사람을 경유해서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걸 감당하기도 하고 짓눌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얼굴 표정을 생산해 낸다.
나 다음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순서 대로다. 배우자 자식 부모 형제 친구 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믿고 기대하였기에 그 파열음은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배우자는 나와 동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지내놓고 보면 어리석을 만큼 관대하다. 배우자가 분명한데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까지 한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인 것 같다. 또 혈육은 물보다 진하다. 시간이 해결해줘 버린다. 친구는 침묵이 해결책이다.
십 대, 많이 힘들었었다. 자매들이 이구동성으로 힘들었었다고 말한다. 사주팔자 운세에도 초년운이 없다고 나왔으니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황홀했었다. 또래들과 함께한 놀이며 생동감 넘치는 활동들은 일생 동안 추억할만한 귀한 보물 같은 시간들이었다.
육십을 코앞에 둔 지금, 가장 치열하게 보낸 시간은 세 아이를 기른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간절한 마음이 형언하기 힘들다고 말할 만큼 절박했었다. 백세를 넘긴 어느 석학께서 말했다. 6.25 때 자식을 기를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그리고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도 말했다. 자식 양육으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진행 중인 것만 같아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까지는 모르겠다. 욕심쟁이처럼 더 큰 행복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고 또 가까운 이들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고는 하지만 뭔가 간절하고 또 절박하면 힘들다고 느낄 겨를이 없는 게 사실이다. 우선 발등에 떨어진 현실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 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자각을 할 시간이 없다. 노령의 석학께서는 고생을 해야 행복의 참맛을 안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부하고 발전해야지 가치가 있다고도 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에는 고생도 비껴갈 수 없는 과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끝까지 살아 있으면 그 또한 추억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잡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것은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나의 적은 나라고 하지만 내 가장 크고 변함없는 우군은 나다. 스스로를 믿고 다독이고 응원하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지키는 자 또한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