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다. 놀랍게도 육십을 코앞에 둔 이 나이에도 아프다. 늙어가면서 '마음은 그대 론데 육신만 변한다.'라는 말들을 종종 한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만 늙어감을 애석하게 생각해서들 하는 말이겠지만 마음이 청춘이기만 한 게 아니라 마음 아플 일 앞에서도 여전히 아프다. 뭐든 의욕 넘치게 해내서 청춘인 게 아니라 작은 일에도 신경이 쓰이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잠 못 이룬다.
늙어서 좋은 게 뭔가 모르겠다. 젊음이란 걸 잃어가면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성숙함이라거나 지혜라거나 저 깊은 곳간 같은 곳에 수북이 쌓여야 될 나이인데 외부의 자극에 여전히 별도리 없이 반응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만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한다. 모두가 나 같지는 않을 거란 거다.
늙어서 좀 다른 게 있긴 하다. 아주 장수할 상인지 어떻게 해서든 스트레스란 게 내 안에 오래 체류하도록 두고 싶지 않아 한다. 어떻게든 빨리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내 안의 지혜를 찾아내려고 애쓰다가 금세 없어서인지 급해서인지 못 찾아내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군가에게 지혜를 구걸하던지 내 안의 스트레스를 반토막 내려고 그런지 쏟아내고 해결 방법을 구걸하곤 한다.
곁을 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때마다 귀도 주고 마음도 주고 지혜도 주곤 한다. 알고 보면 이미 내 안에서 답은 있었고 괜히 또 다른 실수를 막기 위해서 그래도 되는지를 체크하는 수순을 밟는 수준이다.
스트레스 원인을 정면으로 호랑이 굴을 찾듯이 찾아가서 원인제공을 누가 했던지 불이 큰 불이 되기 전에 미안하다고 하든지 속상했다고 하든지 상대와 화해를 해버리고 만다. 그래야 그다음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 알고 보면 예전부터 습관처럼 할 일이 있으면 해 버려야 그다음이 마음이 편했고 그 편안함을 찾기 위해 날밤을 세고서라도 해야 될 일을 하고 만다.
주변에서 성격을 아는 이들은 불합리한 일이 있으면 내게 쏟아낸다. 해결해 달라고 한 마디 안 해도 그 불합리함을 못 견뎌하는 성격 때문에 온몸에 피를 흘릴지언정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고 만다. 가부간 해결이 돼야 다리 뻗고 사는 사람이다. 나 홀로 잔다르크고 유관순이다.
한때는 스스로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용기라기보다 알고 보면 마음 편해지려고 애쓰는 거였다. 불편함을 못 견뎌한다고 하는 게 맞다. 안전제일주의자 그게 나의 정체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걸 못 참는다. 그래서 마음만 숭굴숭굴하고 큰일을 실행을 못한다. 걱정을 스스로 차단하는 거다.
오늘도 불이 붙기도 전에 꺼버렸다. 그 사람과 오래 편하게 지내기 위해 그리고 꿀잠을 자기 위해 "미안하다."라고 해버렸다. 속이 쓰리거나 스스로가 좀 안쓰럽거나 하는 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와의 편안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정도의 표현은 관계 치유를 위한 약으로 쓸만한 가치가 있다.
늙으나 젊었을 때나 똑같지는 않다. 사실은 젊었을 때는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하나가 일어나고 끊임없이 계속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늙으니까 그 빈도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무슨 일이 안 일어난다.
최근 직장 사정으로 며칠을 출근을 안 하고 집에 있다. 앞으로 근 한 달 이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곧 적응이 되겠지만 시작시점이라 독도가 따로 없다. 더 늙으면 아주 퇴직을 할 것이고 그땐 이 적막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다. 결국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직도 젊다는 것이고 지혜가 있든 없든 생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젊게 만드는 길은 작은 공이 여러 바퀴를 돌듯 그렇게 열심히 돌아야 된다. 그런데 왜, 청춘이 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