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

인생, 지혜

by young long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일생 동안 한 번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온몸으로 내게 가르친 것은 '인내'였다. 온몸으로 처절하게 고단한 인생을 헤쳐오셨는데 삼 년이 넘게 병상에 계신다. 병중에 또 욕창이라는 병이 와서 견디고 계시는 걸 보면서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와 가죽밖에 없는 상태에서 더 작아진 모습을 뵙고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이게 인생인가 싶었다.


우리 엄마는 우측 편마비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을 수가 있을까, 말을 못 하다니, 그런데 같은 병실에 다른 환자에게 면회를 온 다른 가족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 좀 해보라고" 하고 또 하는 모습을 보았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이게 인생인가 보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렇게 더 무언가를 겪고 또 겪어야 하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이 모이면 하나같이 부모님 걱정이 대화의 주제가 되곤 한다. 자식을 성인으로 키워내고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부모님이 병마와 싸우고 계셔서 경황이 없게 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남편분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고 65세가 경로 대상인데 왜 그런지 현실에서 체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마음과 별개로 몸이 사용 연한이 다 되었다는 듯한 증상을 한 곳 한 곳 보이는 걸 느끼는 중에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과는 좀 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으니 우리 부모님들 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했더니 다르지 않을 거라고 답하는 이가 있었다. 세월 앞에 진짜로 장사가 없나 보다. 가끔 자신을 다독이기 위함인지 변명인지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기도 하였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거라고 최면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시간 앞에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인걸 부인할 길이 없다.


병상에서 계셔야만 하는 우리 엄마는 내게 무얼 가르치고 싶은 신 걸까? 그간 마음속 말씀은 늘 아끼시고 욕쟁이 할멈처럼 겉으로만 호령하시던 우리 엄마, 별소릴 다 듣고도 그 아끼고 아끼시는 말씀을 읽어내곤 했었지만 지금은 무얼 말하고자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시면 나를 반기시는 거라고 기뻐하며 "엄마, 영미예요, 영미"를 하고 또 하면서 여윈 엄마를 보고 또 본다.


야속하고 또 야속한 인생사다. 서럽고 또 서러워도 묵묵히 죄인처럼 사셨던 엄마,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갖은 서러움 다 당하고도 한시도 다리 뻗고 쉬어본 적 없는 우리 엄마,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검소하게 그야말로 이타적인 인생을 살아오시고도 자식들에게까지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내신 우리 엄마. 딱 한 해라도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온전히 당신을 돌보면서 살아보셨다면 여한이 없었을 텐데 그럴 사이 없이 중환자가 되셨다.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길 잃은 양처럼 멍할 뿐이다. 젊은 시절, 매번 갈급했었다. 내게도 나침반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었다.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지 몰라 밖으로 물을 수 없어서 수없이 내게 묻고 또 물었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서 자식을 낳아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다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병마와 싸우며 생사의 갈림길에 계신 엄마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또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은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화가는 그림을 그렸을 뿐 그 그림을 감상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인생을 그렇게 긴 시간 살아내고도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 우리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네가 잘하지 그랬냐?"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낳은 딸이라고 한 몸처럼 생각하셔서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곤 했다. 노화되어 가는 육신을 감당하면서 적어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살아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생각을 실천하는 부모로 살고 싶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최소한의 방향 하나는 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