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에 있었던 일
방 하나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 밤에 두 명의 수사관이 내 방을 삿삿이 뒤졌다.
"잠시 후 함께 검찰청에 가셔야 합니다."
날마다 아홉 시 뉴스 첫 장면에 우리 회사가 나왔다.
직장 상사분들이 연일 검찰청에 불려 갔었다.
그날은 내 차례가 되었던 거다.
언제 다시 집으로 오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가야 해서 일단 씻었다.
그분들은 몇 평도 되지 않은 내방을 꼼꼼히 뒤졌다.
회사 장부를 숨겨뒀을 거란 전제로 찾고 또 찾았다.
찾고자 하는 건 애초에 없었으니까 못 찾고 빈손으로 날 데리고 잿빛 승용차에 탔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잿빛 어둠이 꿈틀거리는 한강을 건너 뉴스에서 보던 검찰청엘 도착했다.
수사관들은 나를 어느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 방엔 검사로 보이는 사람이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로 의자를 뒤로 져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만 오만 그런 악취가 느껴지자 정신이 바짝 차려지면서 강한 자에게 강한 내 본색이 스스로에게 각성제처럼 뿜어져 나왔다. '뭐야, 저 사람?' 하는 생각으로 정면으로 쳐다봤다.
삼십 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이후 소파가 쭉 배열되어 있는 넓은 방으로 갔다.
수사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몇 시간에 걸쳐서 많은 질문을 했다.
감출 것도 없고 하여 묻는 말에 사실 그대로 대답을 했다.
그러고는 백지를 몇 장 내밀면서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모두 쓰라고 했다.
'오호라, 이런 식으로 취조를 하는구나!' 조금의 놀라움이 마음속에 싹텄다.
지켜보고 있는지라 안 쓸 수도 없고 하여 하라는 대로 했다.
그렇게 그 밤을 하얗게 그곳 검찰청에서 보냈다.
아침이 밝자 집엘 가도 된다고 했다.
태어나서 상상도 못 해본 일을 경험하고 덜컹 겁이 났다.
그 길로 회사로 가서 급한 기한이 정해진 금융 관련 결재 등을 해결했다.
회사에도 카메라며 기자들이 와글와글 했다.
묵묵히 부도날 수도 있는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사직서를 내고 타도에 있는 언니네로 향했다.
날마다 김 모 양 검찰조사를 밤새워 받고 나왔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처음부터 계속 걱정하실 엄마가 걱정이 되었었다.
긴 시간 언니네로 가는 길에 서울을 떠날 수 있음을 안도했다.
이후 계속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다.
출근하라고, 별일 없을 거라고, 근 한 달여를 쉬었다 다시 출근을 했었다.
문제의 발단은 그 시절 대학도 회사도 분쟁이 일상이었다.
우리 회사는 노사분규 중 노사합의가 결렬되자 노측에서 제 밥그릇에 침을 뱉었다.
동종업계에서 모두 상용화되었던 재료를 인체에 유해하다고 소비자보호원에 신고를 했다.
소비자보호원은 수많은 동종업계 제품을 같은 내용으로 기사화했고 그 많은 회사 중 우리 회사만 맞대응을 해서 날마다 톱뉴스로 근 한 달여를 세무조사 등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다.
결론은 사측은 그 타격으로 콩만 해졌고 노측은 실업자가 되었다.
공식적인 결과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작은 지면의 기사가 났었다.
그 후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을 이유로 퇴사를 했었다.
일이 있었던 그즈음엔 회사의 이인자께서 노발대발이었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이유는 대체로 회사에 폐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깊이 숙고해서 답했던 걸 곡해하는 듯했다.
그러나 일인자는 검찰에서의 나의 행동을 무언중에 잘 대처했다고 평가하는 듯했다.
놀라운 일은 내가 썼던 진술서 사본이 회사 대표인 일인자의 손에 있었다.
변호사의 역량이었었나 보다.
그 일로 체감했던 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이런 거구나!'였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중견 이상의 직원들은 검찰문지방을 넘나들었는데 정작 일, 이인자는 불려 가지 않았었다.
그 시절 성장하는 많은 회사들 중 우리 회사처럼 투명한 회사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 많은 시간 동안 탈탈 털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에 머리에 뿔이 몇 개 나있었던 이인자는 시간이 지나고 퇴사 즈음에 덕담과 평생 간직하고 싶은 엽서를 써주셨었다.
가족 같았던 우리 부서원들이 지금도 그립다.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총각사원이 "네, 제 이상형은 김 OO입니다." 했었던 기억도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의 한 장면처럼 기억되고 있다. 사다리 타서 간식을 시켜 먹던 생각, 손가락이 움푹 들어가도록 글씨를 써야 했었던 그때 그 시절의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된다.
마법 같은 시간은 그 무엇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재생산하는가 보다.
그러나 추억이 되기까지는 최소 삼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