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무장을 해도 안 해도 피하고 싶은 건 피해 지지 않는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알아차려버리고 느끼게 된 게 있다. 몇몇 사람들이 내 앞에서 본능적이라고 해야 할까, 원초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들짐승도 아니고 사람이니까 옷을 입고 산다. 그런데 원치도 않고 싫은데 맨몸으로 달려드는 격의 언행을 해버린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내가 있는데 나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삼자에게 원색적으로 행동한 거다. 그런 사람인지 상상도 못 했는데 놀라운 모습을 보아 버렸다. 너무 충격적이라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다.
격식이나 예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평범하게라도 홑겹옷이라도 걸치는듯한 행색은 갖추어야 사람 아니겠나 싶었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만 그럴싸하게 행동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본모습을 여과 없이 보이는 건 그 사람의 인격이다. 평소 모습이 습관인 거고 습관이 인격이 되는 거고 인격이 인생인 거다. 애꿎은 건 보고 싶지 않은 본모습을 보고 오만정이 삼만리까지 달아났는데 그 사람을 또 보고 살아야 했다. 원초적인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렇다 하더라도 왜 난 그 모습을 피할 수 없는 걸까?
무면허가 이런 말하면 좀 설득력이 없겠지만 자동차 사고는 나만 잘한다고 안 나는 게 아니라더니 인생도 마찬가지인듯하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해 지지 않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어제는 텃밭에 뜻하지 않은 부추 뿌리가 생겨서 대파 씨앗이랑 챙겨서 퇴근 후 심으러 갔다.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갔다가 말할 수 없이 많은 헌혈을 하고 왔다. 원치 않는데 그 모기란 녀석들의 독침도 맞아서 퉁퉁부어서 왔다. 가렵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몸으로 하산길에 산책로를 왕복 다섯 번이나 달렸다. 코로나에 왼팔 부상에 겹겹이 건강상태가 말이 아닌지라 살아보려고 망가진 폐에 강제라도 산소를 주입해 보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면역력이 바닥이라 모기독침에 퉁퉁부은게 어둠에 안 보이려니 하고 뛰었던 거다.
오늘도 또 퇴근 길에 그 모기 소굴인 텃밭엘 갈 일이 생겼다. 김장용 배추 모종을 사서 그걸 심으러 가야 했다. 실험 삼아 씨앗을 사서 집에서 모종을 길러서 텃밭에 심었었는데 이튿날 모두 사망해 버렸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종을 사서 심는 걸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따라서 사서 다시 심은 거다. 내일 모래 이틀간 비 예보가 있어서 또 다 죽게 될까 봐서 2/3 정도만 심고 몇 개 남겨왔다. 철통 같이 무장을 하고 갔었던 터라 어제보다는 덜 물렸다.
작년 경험에 비춰보면 배추 수확이 불확실하다. 산기슭에 있는 텃밭이 어둠으로 덮일 때까지 모기에 뜨껴가면서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는 몸 상태로 부상투혼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어제 그렇게 겪고도 그 소굴을 연이어 또 들어가는 심리를 그 누가 이해할까? 누가 시켰으면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을게 분명한데 무슨 악취미인지 스스로가 이해하기 힘들다.
살다 보면 내가 나를 이해 못 하는 경우도 있는데 타인의 행동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월에 기대어 얼기설기 엮어가는 게 인생 아니겠나 싶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 무언가의 이유로 그렇게 저렇게 행동하고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보이고도 살아지는 게 인생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자각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도 다져보며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의 미학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