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분리시킬 수 있을까?

관계, 스트레스

by young long

주변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걸까?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버린다.

스트레스는 무관한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받지 않는다.

애정하는 사람들이거나 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받는다.


직장생활을 하노라면 꼭 심통 사나운 사람들이 한 두 명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연륜 있는 분들이 조언을 한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와 분리시키세요. 그냥 그런 사람도 있다고 흘려버리세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가능한 걸까?

본인들은 그런다고 하니까 적어도 그런 분들은 스트레스와 본인을 분리 가능한가 본데

왜, 나는 그게 안 되는 걸까?

스스로의 능력치가 좀 아쉽다는 생각도 했었다.


오늘에야 관련하여 조금 깨닫게 되었다.

'나도 가능하구나!'


스트레스 제조공장 같은 상사가 있다.

교묘하게 또는 최고로 연구하여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요행이 그 상사가 내 업무와 분리되게 분장이 되었다.

대체인력이 왔는데 그분에게 말했었다. "예측 가능한 분이라 다행입니다."

이 평화를 이렇게 누려도 되는 걸까? 스스로 믿기지 않아 하며 지낸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평화의 호수에 돌을 던지는 이가 있었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면서 불편함을 꿀꺽 삼켰다.

참았는데 같은 사람이 무례함을 장착하고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워낙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이고 앞뒤 없이 덤비는 사람을 상대했다간 같은 사람이 되기 쉬워서 또 참았다.

이전의 행동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특급 비행이었다.


의연하고 또는 의젓하게 뭐 내가 갖은 가장 차분함을 투명옷처럼 입고 담담하게 대처했지만

퇴근길부터 머리가 아프고 이걸 이렇게 넘기는 게 맞나, 깡패 같은 저 사람을 두고 또 참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삼세번이라고 했겠다. 한 번만 더 참아볼까, 별별 생각이 많았다.

결국 더 시간이 가면 잊히고 상황이 각색될 수도 있고 하니 이번에 확실하게 주의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 후 전화를 했다.

"시간 되시면 차 한잔 하실까요?"

그분의 대답은 "아뇨, 저 바빠요."

그 전화를 끝으로 나도 우선 바쁜 일을 처리했다.

그 후 시간을 내서 그 부서에 노크를 했다.

난 걸 확인하자 바로 "말하고 싶지 않는데요."

더 주고받은 대화로 인해 어제의 무례함이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그분의 행동으로 나만 못한다고 생각했던 '스트레스와의 분리를 할 수 있겠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지 않고 분리시킬 수 있는 길은 쉽지 않다.

다 가능한 건 아니다.

전재는 상대에 대한 애정이 없어야 가능하고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하다.

그 대 전재는 성립되기 힘들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상대는 나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구제하기 힘들 정도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스트레스를 분리시킬 수 있다.

스트레스야, 가거라 누군가와 함께 가거라.

그렇게 보낼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 걸 경험했다.

한동안 자주 물음표를 던졌다.

그게 가능하다고? 왜, 난 그게 안될까?

그게 가능한 사람은 성자의 경지에 든 사람이 아닐까?

별별 생각을 다했다.

살다 보니 별별 걸 다 경험하게 된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오묘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