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자아

유머

by young long

시간은 자신의 나이에 제곱의 속도로 흐른다는 속설이 있다. 어릴수록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흐뭇하다. 반면 "어려 보인다. 젊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 지면 그때부터 늙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가끔 하루가 길다고 느낄 때가 있다. 뭔가를 해내기 위해서 긴장하며 바삐 움직였을 때 대체로 '하루가 여삼추 같다.'라고 느끼며 시간이 엄청 더디 간다고 느낀다. 각자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백세시대에 중반을 지나면 시간 또는 나이에 대한 생각이 그전과는 조금씩 달리 느껴질 것이다. 특히 한해의 이맘때가 되면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뭐가 그리 삶의 무게가 무거운지 날마다 뭐 그리 진지한지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갈 것이고 세끼 먹고사는 건 다르지 않을 텐데 일상이 매번 너무 진지한 것 일색이다. 이쯤 해서 공기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찾고 싶다. 유머가 장착되었었던 나를 찾고 싶다.


십 대 후반에 우리 반 학생들 앞에서 회의를 주제 할 때면 딱히 뭐라고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말끝에 담임선생님의 입꼬리가 위를 향했었곤 했었다. 그리고 결혼 전 직장 생활할 때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 웃음에 내 유머도 일조를 했었다. 이웃 부서에서도 짬짬이 티키타카를 위해 놀러 오곤 했었다. 그 이후 삼사십 대 육아에 전념하면서 그림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날마다 즐거웠었고 동료들이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 엄마는 집에서 웃기려고 따로 공부하니?" 이렇게 묻곤 했었다. 그 이후 지금 다니는 직업을 갖고부터 유머가 사라졌다. 잊고 지냈던 나의 모습을 찾고 싶다.


유머가 실종된 이유를 찾아서 그 원인을 개선하고 싶다. 애초에 갖고 있는 본성은 거의 변치 않고 유지하고 있다. 곰 같은 나, 삼십 대에 사주팔자를 글로 배운 분이 봐준 종이를 오래간만에 펴봤는데 그때는 무신경하게 봤었는데 거기에 '정직, 근면, 성실하다.' 이렇게 쓰여있었다. 남편이나 자식들도 너무 투명하고 앞뒤가 같다고들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둘째가 최근에 "엄마는 속세의 떼가 묻지 않았다."라고 까지 했다. 그런데 내 본성의 매력포인트가 '유머'라고 생각하는데 그 유머가 집 나가고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단한 직장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자정작용에 급급하느라고 여유라고는 없었던 게 그 이유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잊고 살았다.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유머가 사라졌다는 것을. 바삭해져 가는 육신과 더 바삭해져 버린 영혼,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부재를 자각했으니 그 흔적이라도 찾아서 공들여볼 생각이다. '유머'라는 녀석이 찾아올 수 있도록 '여유'라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보려 한다. 지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