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눈물
사십 년도 넘었다. 큰언니가 결혼을 하던 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딸만 넷인 우리 집의 첫 결혼식이었다. 나만 빼고 온 가족이 식장엘 갔었다. 중학생인 나는 집 마당에서 동네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치는 큰 차양을 쳐놓고 음식을 차려 놓고 동네분들을 대접하고 식장엘 못 찾은 분들의 축의금을 받았었다. 식을 마치고 돌아오신 그날 하염없이 눈물 흘리신 아버지가 잊히질 않는다.
둘째 언니의 결혼식 날도 우리 식구는 단체로 울었다. 친정집과 가장 먼 곳으로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엉엉 울었다. 그런데 그게 기우가 아니었다. 진짜로 언니는 결혼 후 명절에 단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충분히 울만 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겁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 집이 비행기가 다니는 경로였을까? 어떤 이유에선지 그땐 비행기소리가 자주 났었다. 그때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었다. 뿐만 아니라 어버이날 노래 등 가삿말이 슬픈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땐 눈물뿐 아니라 콧물까지 흘리며 울곤 했었다.
내가 결혼할 즈음 난 엄마의 '엄'자만 듣고도 울었었다. 하도 울어대서 결혼식 날 얼마나 울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물 버튼이 멈췄었다. 시작은 고향에서 버스를 불러 타고 오시는 하객차가 대도시의 교통난으로 시간 내에 식장에 도착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었다. 엄마는 걱정이 화로 분출이 되어 딸이든 사위든 상관하지 않고 호령하셨다. 그러느라고 울 겨를이 없었다.
고3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생전 처음 겪은 일이었다. 당연히 울긴 울었었다. 그런데 슬픔으로 우는 건지 엉겁결에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 가장 크게 차지했던 감정은 돌아가신다는 게 뭘까? 진짜인가? 앞으로 계속 아버지를 볼 수 없는 건가? 이게 진짜야? 계속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올해 초 엄마가 돌아가셨다. 삼 년 삼 개월을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여러 번 중환자실로 가셨다를 반복하시고 다시 머루알 같은 눈망울로 "영미 왔구나!"라고 반기시던 엄마셨다. 진한 진통제를 뚫고 좌뇌마비로 말씀을 못하시던 엄마가 소리를 밖으로 내보내며 몸부림치시던 모습을 뵙다가 돌아가시고 평온한 모습을 뵙게 되니 믿기지 않지만 안도감이 밀려왔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지만 죽음이란 이별 앞에 슬픔이란 게 전부일거란 생각이었는데 안도라니 이게 뭘까? 알 수 없었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도 이해되지 않았었다.
인생 백 년이라면 절반을 살아냈으면서도 이해되지 않고 짐작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미지를 탐험하듯 새로운 건 다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얼 더 선호하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더 익숙한 게 좋다고 얼른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눈물이 건강한 눈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눈물이 나지만 왜 우는지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은 다시는 맞이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