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새 걸로 바뀌는 중입니다.

나이, 시간

by young long

사각사각 여유 있게 낙엽을 밟지 못하고 다다다 등줄기가 축축해지도록 달렸다. 스스로를 겉으로라도 읽어낸 바로는 극복이 가능한 정도로 힘들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소연이란 이름으로 쏟아낸다. 힘든 세기가 강해지면 말이 없어진다. 그다음 행보가. 무념무상으로 그냥 달린다. 얼마간 땀을 흘리고 나면 새 숨이 쉬어진다.


며칠을 스스로 다독이는 중이다. 나무가 원튼 원치않튼 바람이 불면 흔들리게 된다. 누군가가 시작했다. '이 나이에 적어도 나 하나는 지킬 수 있어야지 않겠나.' 생각이 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했다. '웬만한 나무는 이쯤 되면 뿌리째 뽑혔겠네.'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남일이 아니고 우리 일인데 시작부터 강 건너 불구경 모드를 취한 사람, 최종결정자인데 허울뿐인 '민주적이다'는 슬로건 뒤에 숨는 사람, 취지나 목적 내용에 대한 몰 이해 속에 직권을 남용하는 사람. 몰상식으로 철갑을 두른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그 속에서 맥없이 죽지는 않겠노라고 발버둥 치는 나. 무슨 역사 속의 엄청난 전쟁의 한 장면 같다. 이게 일상이라니 너무 다이내믹하다.


과정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일인자가 한 말이다. "저는 자기애가 강해서 다 흘려보낸다." 이 말은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 너만 손해다."를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고 들었다. 그게 당사자와 제삼자의 차이일까? 매사 습관적으로 모든 일을 너무 내 일처럼 생각하는 버릇일까? 성격 안 변하고 고친다고 고쳐지는 건 아닐 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심을 다해서 사는 것처럼 살자.', '어쩌겠냐, 한 번 살지 두 번 사느냐?' 이런 아주 위험한 내면이 탑재되어 있다. 그래서 '아니다.' 싶은 경우가 발생하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다. 미련곰탱이 같다가도 가끔씩 제대로 생존신고를 한다. 나이가 아주 어마무시하게 많이 먹었는데도 그 성품은 늙지를 안는다. 살살 스스로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정리하고 은근히 뿌듯해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생전에 우리 엄마 성품이 그랬다.


'자기애' 우주 어느 곳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생명체 같은 낯선 단어, 총탄이 쏟아지면 슬그머니 피하는 게 '자기애'일까?,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를 취하고 본인과 잽싸게 분리하는 게 '자기애'일까? 분명히 본인과 관련이 있고 그걸 적극적으로 해결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 장수의 비결인데 어줍잖게 내가 뭐라고 판단하려 드는 걸까? 흉내도 못 낼 거면서 어쩌자는 건지.


밍밍한 거 싫어한다. 물컹한 것도 싫어한다. 이러네 저러네 해도 나만의 '자기애'가 있다. 곧 죽어도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피가 범벅이 될지라도 또 그런 선택을 할 나를 나는 사랑한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그런 '자기애'하고는 결이 다르다. 시대를 맞춰 태어났으면 영락없이 독립투사감이다. 의리에 목숨 걸 사람이다. 스스로도 나를 어떻게 고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선택한 게 그런 나를 사랑하려 애쓰는 것이다.


2025에서 2026으로 바뀌는 중이다. 달력 한 장이 뜯기면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 생물학적으로도 많이 노화될 것이다. 아무 의식 없이 살다가 그간 써 온 눈코입귀 내장 두뇌 관절 피부 모두 지치고 힘들어할 것이고 의식하려고 안 해도 그 기능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알게 될 것이다. 다 늙어도 그래도 내 생각은 늙지 않길 바란다. 세상 앞에서 더 이상 비굴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러지 않기 위해 약간의 노력은 했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도 내게 이런 말을 하려고 하니까 살짝 미안해진다. 김영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