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감사를

남편, 부부

by young long

왜, 갑자기? 웬 감사?

늙을수록 귀찮아서 남의 말을 길게 못 들어준다. 늙으면 늙을수록 더 그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생을 마감할 마감선이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옆에 딱 둘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 서로의 숨결이 마지막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왜, 갑자기 남편에게 감사를 하냐고 묻는다면 한 해 동안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잘 들어주고 때론 나보다 더 화를 대신 내주고 가장 최근엔 "눈이 하나만 있는 사람 속에선 눈 둘 있는 사람이 아픈 사람취급받는다네 그런 줄 알소." 이런 말도 해줬다. 그리고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닌데 최근엔 전화로라도 "아무래도 요즘 많이 힘들 것 같아서 자네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았네." 호호호 오래간만에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고마웠다.


예전에 아주 감당이 안 되는 억울한 일을 겪을 때였다. 그 일에 대한 얘길 듣고 남편 왈"싹 다 고소 하소, 내가 변호사비 얼마든지 댈 테니 그렇게 하소." 이렇게 말했다. 평생 남을만한 어록이었다. 고소라고는 'ㄱ'자도 못 꺼낼 위인이 아내 생각해서 그의 사전에 없는 단어까지 꺼내고 길이 남을 고마운 말이었다.


우리 집에서 나의 캐릭터는 시녀처럼 일하고 남편에게든 자식에게든 칭찬 한마디 듣고 10년씩 버티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걸 간파해서일까 아이들이 좀 하면 "엄마 덕분이다.", "엄마 동네 터가 좋아서다." 남편이 그러곤 했다. 알고 보면 김영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다.


언젠가 사촌 올케언니가 말했었다. 사촌오빠를 지칭하며 "딱히 이거다 하는 명목이 없어서 이혼을 못한다."라고 말했다. 말할 땐 이렇게 무시무시하지 않았는데 글로 쓰니까 아주 살벌하다. 어쨌든 그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이 박장대소했었던 기억이 있다. 남 얘기 같지 않아서 공감의 표시로 그렇게 크게 웃었지 않았나 싶다. 그런 남편도 옆에 있으니 숨구멍 역할도 해주고 좀 과한 거 같은 표현을 하자면 '결혼은 할만하구나!'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 남편은 웬만한 여성 아니고선 곁에 아내라는 이름으로 붙어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웬 오만? 본인만 버텼다 그 말인가?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건 듣고 보면 완전히 동감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다 버리고 남편의 아버지이자 내 시아버지를 교주로 모시고 산다.


우리 시부모님은 사 남매를 낳으셨다. 다른 자식은 보통사람들처럼 사는데 맏이인 우리 남편은 부모님을 신앙처럼 받들고 모신다. 지금은 시부모님께서 늙으셔서 그렇다 치지만 지금 나보다 시부모님 연세가 훨씬 덜 드셨을 때부터 그랬다. 예전엔 내가 남편을 '국가대표 효자'라고 칭했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그 소리도 하기 싫다.


오랜 시간 남편의 아내이니까 나 또한 그렇게 살았었다. 그러나 남편도 인정할만한 여러 계기로 같은 신자 이길 포기 했다. 우리 남편은 너무 빨리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본인의 인생은 없었다. 그 사람은 스스로를 존재하는 한 인간으로 대우해 준 적이 있나 싶다. 결혼이란 걸 탐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할 상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존재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면서 묘하게 아내도 자신과 동일시해 버렸다.


그런 그를 향해 감사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없는 것보다 낫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심이겠지만 나는 그가 나를 읽었다고 생각한다. 나란 사람은 칭찬 몇 마디면 몇십 년을 버틴다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초 삼 년이 지나고부터 그를 읽었다. 고쳐쓸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를 향해서 잔소리란 걸 시작부터 안 했다. 그와 동행하는 길은 그를 향한 포기가 답이다고 마음먹었었다. 그 결과 삼십 년을 넘겼다.


지금까지 살아본 소회로 비춰봐서 오십이 넘었더라도 결혼은 하고 볼 일이다고 말하고 싶다. 이 결과는 내 남편이 쌓아 올린 공이다. 그리고 한 해를 넘기면서 내편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남편이든 아내든 배우자는 법적으로 맺어준 벗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 또한 내 남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