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나
몽롱하다. 새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한 공 두시 오 분 전. '잠을 자야 해'를 반복하다가 다시 불을 켜기를 몇 번째 몽롱하지만 내게 말을 걸기로 했다. 온통 땅은 바스락 거리는데 하늘은 시간마다 너무나 화려하다. 이른 아침엔 먼동이 트고 지면과 각도를 급히 늘려가며 해는 떠오른다. 퇴근 후 급히 야채와 과일을 갈아서 한 컵 들이키고 뒷산을 향했다. 걸으면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힘껏 뛰어서 한 시간을 조금 넘기고 다녀왔다.
아침은 더 높이 떠오르기 전에 저녁땐 더 깊숙이 숨기 전에 해와 달리기를 했다. 해는 위대하다. 그의 등장과 퇴장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도 가장 빼어난 화가도 뛰어넘기 힘들다. 일출과 일몰의 기운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듯 온 껏 만끽하지도 못하고 출근시간을 의식해서 헉헉 거리며 뛰었고 산속에서 맞이할 어둠이 무서워서 또 헉헉대며 달렸다. 이게 현실이다.
요즘 많이 힘들었다. 매번 힘들 때마다 중심 있게 행동했고 스스로 담담하게 잘 버텼고 스스로에게 당당했다. 이번에도 나의 행동은 다르지 않았다. 불합리하다는 단어를 쓰기도 싫을 정도로 그 단어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컸다. 지금도 그 앓이를 하고 있다. 공격을 해오면 싸우기 싫어서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당함을 싸워 보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출혈이 감당이 안되는데 맞서 싸웠다.
그 싸움의 한가운데서 채용이라는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다. 계획을 세우고 공고를 하고 면접을 하고 합격자를 발표하고 서류를 받고 계약을 했다. 그 후속의 스텝을 밟는 중에 일상의 업무도 동시에 해내고 있다. 부당함의 시초는 업무분장이었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느라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게 진행 중에 한 치의 오차를 허락하지 않는 채용 업무를 해냈다.
그 과정 중에 위경련이 일어났다. 심한 쓴 위액의 역류를 잠재우기 위해 약을 복용하며 일을 해냈다. 퇴근한 내 몸은 눈 흰자위가 핏물이 흘러나올 것처럼 빨개졌다. 주말을 맞아 쉬는데 턱밑이 가려우면서 오돌토돌 모래알 같은 발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 볼과 이마로 발진이 확산되었다. 약을 먹고 바르고 내 몸을 달래는 중이다. 강한 스트레스의 결과인지 노화로 그걸 감당을 못해서인지 마음도 힘들었지만 그걸 담는 육신이 한계를 보이는 듯하다.
전쟁에서 적군이 총칼을 휘두르면 그에 맞서는 전투력이 생긴다. 가장 감당이 안 되는 건 아군의 배신일 거라는 생각이다. 부서장의 '우리'는 없고 '나'만 챙기는 태도. 그것도 근거 없는 자격지심급 피해의식. 자기만 아는 행동으로 오해를 하고 그 오해를 주변에 발설하는 답 없는 행동을 해서 기계가 아닌 인간인 걸 확인하는 '마음'이란 걸 축출해 버리는 동기를 제공해 버리는 행동이 뼈아팠다. 그걸로 인해 전의를 상실했으며 사람에 대해 또 공부하는 계기를 맞았다. 불필요한 공부다. 안 해도 되는 공부다. 안 했으면 좋을 공부다.
'그럴 수 있지!'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참 안타까운 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분별없이 행동할 때이다. 매번 난 정의로웠으며 그게 나의 당당함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수렁에 빠지듯이 분별없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어쩌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살피게 된다. 공 세시 오분전이되었다. 몽롱하게 시작하여 몽롱한 말을 쏟아내고 있지 않나 싶다.
육신의 변화가 '너 지금 많이 힘들어.'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많이 힘들지만 정면 돌파하고 꿋꿋이 이겨 낼 것인지 이곳에서 만기가 되었으니 이동해야 하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유예를 할 수 있으니 이동하지 않고 버틸 것인지 두 마음이 시소를 탄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상수인지, 피하기는 뭘 피하냐, '내가 왜?'가 답인지, 고심 중이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다이내믹할 줄이야? 이런 풍랑을 겪게 될 걸 예상 못했다. 젖은 낙엽이거나 밟으면 부서지는 낙엽일 거라는 걱정은 있었으나 뇌를 태우는 심한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예상이나 상상조차도 못해봤다. 어떻게 극복해 나아갈지 나 스스로의 행동이나 역량이 궁금해진다.
힘들 땐, 난 가만히 있었는데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서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사주팔자까지 의심해 보았다. 나약할 대로 나약해져서 서면으로 사주팔자를 풀이해 준 그 종이까지 찾아서 다시 보았다. 그 종이엔 정직, 성실하다고 쓰여 있다. 어쨌든 스스로를 끝까지 믿어볼 생각이다. 피해자가 힘들어하고 가해자가 기세등등하게 사는 꼴은 못 보겠다. 그렇다고 피하는 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응원해야겠다. 김영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