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삶, 꿈
'누구냐고 묻는다. 내게.' 이 질문은 '넌 어떻게 살았니?, 지금 넌 어떤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니?'의 물음이었다. 자꾸 내게 뭔가를 추궁하는듯한 인상이 짙었다.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데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인상이라 질문을 자제하기로 했었다.
지금은 현실을 자각하고 직장이란 울타리 속에서 힘든 시간들에 대해 더는 힘들고 싶지 않아서 '포기'인지 '수긍 아님 수락'인지를 해버린 상태라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
햇살이 유난히 고은 휴일 대낮이 불면에 시달리던 한밤중처럼 고요하다. 털털 털고 등산을 가기 직전 밝게 빛나는 고요함이 글쓰기를 유혹해서 이렇게 붙잡혔다.
오늘은 언젠가 퇴직 후 장인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내비쳤었던 그때와 달리 요즘 심경은 '뭘 해야겠다, 돼야겠다.' 이런 것 보다. '편히 살고 싶다. 뭐가 되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가 날 지배하고 있다.
근 육십 년간 살면서 쌓은 이력서는 '하면 된다. 꿈은 꾸는 대로 이루어진다.'가 비현실적이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워낙 허풍 제로라 안될 것은 꿈꾸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지만.
그렇다면 난 또 될 꿈을 꿀 수밖에 없다. 최근 약간의 유혹이 일렁였다. 군대 간 막내에게 대학원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막내는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게 보였다.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이 살짝 탐이 났었다. 이내 마음을 닫았지만 꿈틀거렸었다.
퇴직 이후 버겁지 않은 선에서 꿈을 그려볼 생각이다. 외롭다. 공허하다. 이건 다른 말로 평화롭다. 행복하다. 일 것이다. 큰 걱정 없이 순리에 맞게 삶이 순항 중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미래는 내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 꿈꾸는 시작 단계부터 실행해 나아가는 나를 내가 안다. 퇴직 후 농부가 되기로 한 남편과는 달리 나의 미래는 아직은 열려있다. 상황이 예측불허의 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에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
안전제일주의자이던 전체적인 삶이 노후를 걱정하는 마음까지 가세해서 더 안전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뭘 그렇게 두려워하니, 이제라도 시원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렴. 이런 마음이 동한 것도 있다.
누군가는 현재의 소득은 물론이고 빚까지 내서 여행을 다닌 이 가 있었다. 사이비 교주처럼 '미래를 돈으로 샀다.'라고 했다. 평생 빚 한번 내어본 적 없는 사람으로선 황당한 괘변으로 들렸다. 여행전문가가 되기 위함이라면 다르지만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행동이다.
신이 인류를 창조했다거나, 부모님이 나를 낳은 것은 사실일지라도 '나'를 만드는 주체는 결국 '나'인 게 분명하다. 시간과 상황 속에서 선택과 집중(노력)의 반복 과정을 통해 '나'가 만들어진다.
남은 나의 시간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내 생명의 가치가 소중하고 아름답게 발휘될 수 있도록 살아보자. 나의 적도 나의 우군도 결국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