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따뜻함
시간이 흐를수록 아니,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난 지혜는 생기지 않고 아닌 사람을 하나 둘 확인해 버리는 눈만 밝아진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가을을 맞이하려는 초입부터 원치 않는데 바사삭 거리는 낙엽이 밟힌다. 붉게 물든 후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아닌 사람을 발견해 버린다.
대체로 잘못을 심하게 저지르고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등을 돌린다. 아닌 짓을 할 때마다 어느 때는 모르는 척도 하고 어느 때는 풀어보려고 "이럴 때 힘들었다. 앞으로는 잘 지내자." 이런 노력도 하면서 삼한사온의 날씨처럼 좋기도 하고 때론 힘들기도 하면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잘못을 하고는 마치 내가 그 잘못을 하게 한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등을 보인다. 그때마다. 아프다. 많이.
정신없이 무언가를 향해 질주할 땐 마음이 힘든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이 바쁜 시간이 지나고 여백이 생기자 작은 바람에도 쉬이 흔들리는지 흘려버릴 만도 한데 그때마다 뭘 그리도 아프게 느끼는지. 나이가 들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을 맞이하면 얼마나 더 아프고 시릴지 가늠이 안 간다. 모든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나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추위를 견뎌야 한다는 걸 깨우치게 되려나. 미리 시리다.
요즘 더 많이 따뜻한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렁인다. 마치 겨울이 올 걸 아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를 배려하고 누군가가 이렇게 해주길 바라겠지 하면서 미리 예견하며 행동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오지라퍼로 폄훼하곤 할 때가 많았다. 정작 내속엔 누군가도 나처럼 나를 위하는 이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게 있어서였을까라는 속마음을 추측해 본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마음을 써주면 필요 이상 감사해한다. 언뜻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당신을 생각해 주는 이웃에게 행동으로, 다른 표현으로는 그분이 일손이 필요한 것 같으면 열일 져치고 그 집 일을 어마어마하게 해줘 버리곤 하셨던 게 생각난다. 딱 우리 엄마를 닮았다.
식구들 앞에선 표현해보지도 못하고선 밥친구들 앞에선 우리 남편에게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이러고 농담을 하곤 했다. 남편에게는 거의 십 년에 한 번꼴로 감동을 받은 격이어서 결핍에 의한 마음의 소리를 그렇게 했었다.
식구얘기가 나온 김에 아이들 성향을 말하자면 우리 큰아이는 큰아이가 크는 내내 '이럴 때는 이게 필요할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한 발 앞서서 해주곤 했다. 상대적으로 둘째 셋째는 그러지 못했다. 마치 거저 큰 격이다. 그런데 둘째 셋째는 은근히 내게 감동을 준다. 혈액형의 차이인지 내 행동의 결과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식구 다섯 명이 지금은 각집살이를 한다. 마치 외로움을 견디는 훈련을 하듯이 각자 직업이라는 사회생활을 위해 본의 아니게 흩어져 산다. 당연한 변화인데 뭉쳐서 살던 때가 그립다. 그래도 아직은 직장생활로 몸이 바쁘니 덜하겠지만 남편과 나는 머지않아 퇴직을 하고 여백이 커지면 외로움도 더 커질 것이다.
내가 찾는 따뜻한 친구, 그 친구가 내 남편이길 바란다. 이제껏 나의 배려는 스스로를 오지랖이라고 폄훼했는데 어쩌면 그 오지랖을 누군가는 따뜻함으로 해석해 주길 바란다. 내 마음처럼 늘 데칼코마니와 같이 누군가도 내게 같은 마음으로 다가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 더 외로웠었던 것 같다.
슬프고 걱정도 되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외로움, 그것만큼은 내게 해답이 있다고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구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진짜 내가 바라는 따뜻함이 내 옆에 존재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