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욕심

외로움, 행복

by young long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 욕심, 다른 표현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 그게 무의식적으로 있었다. 힘들고 스트레스받고 유난히 그런 시간들이 많았다. 그 행동의 끝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 속엔 그 욕심이 있었고 그런 게 깨질 것만 같아서 힘들어했다.


웃긴 건 어떤 상황이 있을 땐 그런 욕심은 깡그리 잊고 원칙 정의 소신 가치관 이런 것들로 불도저처럼 달려버린다. 내 한 몸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건 중요치 않고 아닌 건 아닌 거고 아닌 거 앞에 손익도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다. 할 말은 하고 할 수 있는 행동은 최선이란 단어도 약할 정도로 끝까지 해버린다. 그게 나고 그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모두와 잘 지내길 탐하며 좋은 사람으로 보아주길 원하는가, 누군가는 그런 나를 힘들어할 것이고 피하고 싶지 않겠는가? 운 좋겠도 그럼에도 내 남편은 나를 순하다고 말하고 잘 살고 있다고 말하며 내가 분노하는 포인트에 더 분노하고 그 어떤 비용도 걱정하지 말고 더하길 부채질해 버린다. 고마운 일이다. 내 용기를 진짜 용기로 인정해 줘서.


내 남편처럼 내 기쁨에 기뻐하고 내가 겪은 불합리한 일들에 나보다 더 분노해 버리는 분이 있다. 늘 고마워하고 사랑하는 오인자선생님이다. 내 세상에도 그런 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갈증이 있다. 그 두 분도 나 말고도 걱정할 일들이 더 많다. 큰일 아니고서야 명함도 못 내민다.


두 번째 욕심은 아주 시시콜콜한 감정선까지 서로 공감해 줄 포근하고 따뜻한 친구가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김영미는 옳다. 난 널 믿는다의 다른 표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서운했다고 해도 팩 토라지지 않고 그래 그럴 수 있어, "네가 날 얼마나 크게 생각했으면 네가 서운해했을까, 미안해." 이럴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내게 가끔 조언을 구하곤 한다. 같은 직군인 낯선 사람도 그중에 있었다. 그들이 힘들어하면 어떻게든 그 힘듦이 반복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내가 힘들면 가까이 지내는 같은 직군의 두 분께 쏟아낸다. 그냥 말만 했을 뿐인데 많이 해소되곤 한다. 그래도 무언가가 아쉽다. 드물게라도 식사를 한다거나 차를 마시며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야만 할 것 같다.


십 년을 훌쩍 넘게 매달 식사를 하는 두 분이 있다. 두 분은 한두 살 연상이다. 그분들껜 구십까지 그렇게 지내자고 했다. 그분들은 멀리 이사 가지 않으면 그럴 분들이다. 나와 다른 듯 닮은 분들이다. 성숙하고 듬직한 분들이다. 특히 한 분의 배려심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고 많은 걸 감사히 누리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란 오묘하다. 기대가 크면 어김없이 큰 상처로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다 갖추기가 어렵다. 우리 엄마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듣기도 전에 "네가 잘하지 그랬냐."라고 하셨다. 딸인 나는 늘 엄마가 걱정하실 걸 걱정해서 말 못 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나를 믿고 의지하셨고, 난 엄마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관계 속에서 완벽하게 만족하며 산다는 건 어렵다. 적절한 비유가 될진 모르지만 내가 내 남편과 결혼을 결심할 때 기본 심성을 갖췄다고 판단하고 다른 부족한 부분을 보면서도 나 또한 상대가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결혼이 가능했다. 나 아닌 모든 타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온전히 따뜻한 사람을 찾는다.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