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그리고 타협
부정을 부정하면 긍정이라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포기했더니 예상밖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
우리 셋째의 말이 "저를 포기해서 그런 거예요."였다.
내 질문은 "형이 좋은 수학 학원을 소개해줘서 고등학교 3년 내내 1등급을 할 수 있었지?"였다.
그런데 뜻밖의 답을 한 거였다.
우리 셋째의 성장기는 첫째, 둘째와 달랐다.
중학교 때였던가 셋째에게 말했다. "네가 만약에 원하는 대학엘 못 가게 된다면 아마도 수학 때문일 거다."라고.
그땐 수학학원엘 보내놓으면 그 학원 문을 닫는 시간까지 있다가 왔다.
그 학원 방침이 과제를 안 하면 할 때까지 집엘 안 보냈다.
한숨 쉬며 걱정을 하면 둘째가 말했다.
"누나나 저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잡고 안 가르쳐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별별 방법을 써도 도무지 해결되지 않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그런 기억으로 대학생이 된 셋째에게 말을 걸었더니 자기 자신을 포기해서 수학을 잘하게 된 거였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때 글줄 형식의 수학문제가 나오면 항상 되물었다.
"경우의 수가 다양한데 왜 꼭 그것만이 답이라고 하세요?"
셋째는 계속 혼자서 힘들어하며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때부터는 표현도 못하고 그냥 침묵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게 고등학교 때부터였던 모양이었다.
그 찬란한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줄 어른이 없었다.
'질서', '규칙' 그 편리한 단어를 앞세워 고정된 틀속으로 가두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엄마는 엄마 나름의 포기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밖으론 '걱정'이라고 말하고.
다 큰 셋째에게 스스로를 포기했노라는 답을 듣고 마음속에 '풍덩' 돌 하나가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다 같은 글을 쓰다가 "남편을 포기했다."라는 표현을 했었다.
그래서 삼십 년을 넘게 살았다고도 했다.
살기 위한 선택이 '포기'였다.
말을 해서 고쳐질 것 같지 않았다. 고상한 표현으로는 '다름을 인정한다.'일까? 아니다.
그냥 솔직한 표현으로는 '포기'였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고 원하는 방향을 주장하다가 수없이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결국 상처만 남고 고쳐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십 년 전 난 '포기'를 선택했었다.
아주 중요한 선택이었다.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면 바뀌고 그러면 굳이 포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생활인으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게 '포기'였다니 참 슬프다.
직장 상사가 '자기애'라는 걸 언급하며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흘려보낸다고 했다.
그 속내는 상대 또는 상황을 '포기' 한다는 다른 말이란 걸로 이해하게 되었다.
"굳이 잘 지내려고 애쓰지 마라"라는 말 같아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터놓고 말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으면 시간을 더 갖고 노력하고 그렇게 사는 게 진짜 인생 아닌가? 누구하고 든. "왜, 넌 네 남편도 포기했다며?, 뭐니?" 라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굳이 '포기'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성향' 그걸 고치는 걸 포기했다. 쉽게 고칠 수 없고 고친다고 덤볐다간 끝을 볼 것 같아서 '포기'를 한 것이다.
어떤 이유 건 '포기'란 참 많이 슬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