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결혼 첫 해는 참기름집 3층에서 전세로 살았다. 다음 해에 작은 아파트를 사서 살았다. 그 아파트는 복도식이었고 같은 또래들이 함께 오가며 재미나게 살았었다. 같은 층에 사는 다섯 가구가 집 문을 열어놓고 서로 오가며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날마다 까르르 까르륵 웃음이 끊이지 않고 살았다. 점심을 돌아가며 어느 집에서 함께 모여서 먹곤 하였고 일이 있어서 집 밖을 나갈 땐 그 집 아이를 당연하게 남아있는 집에서 돌보곤 했다.
그 시절엔 아직 연하게라도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었던 시기였다. 누가 뭐래도 난 내가 아들을 낳고 싶어 했다. 종손의 장남인 아버지의 한이 아들 못 낳은 거였다. 대놓고 한 맺혀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알게 모르게 아들을 낳고 싶어 했었다. 멋 모르고 장남과 결혼을 하였고 첫아이를 딸을 낳았다. 시절이 거의 두 명을 낳는 게 불문율 같았으니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둘째는 아들을 낳아야 할 판이었다.
한의원인지 한약방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약을 파는 곳이 있었다. 나와 처지가 같은 장남과 결혼하고 첫아이를 딸을 낳은 옆집 친구가 본인의 사례를 들어가며 첩약을 지어서 먹으라고 곤했다. 이웃이 장에 가면 따라가듯 의심 없이 따라 했었다. 그 시절엔 병원에서 임신 중 초음파를 보고 남녀 성을 알려주거나 그러면 안 되었다. 그래도 많이 궁금해하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이렇게 답했었다.
그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었다. 시어머니께 속상한 마음을 비췄더니 "귀한 딸을 낳게 되었는데 무슨 걱정이냐, 별 걱정을 다한다."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친정엄마께는 운도 떼지 못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장남과 결혼한 셋째 딸이 아들을 낳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분이 엄마 셨기에 혹여라도 아실까 그게 걱정이었다. 초음파 판독과는 다르게 막상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둘째를 아들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엄마는 같은 동네 사시는 외숙모께 전해 들은 말인데 동네회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고 했다. 그렇게 스토리가 있는 둘째의 탄생일이 오늘이다. 누구의 생일이든 우리 식구 단톡에 가장 이른 시간에 축하메시지를 띄우곤 했는데 오늘은 엄마인 내가 무려 세 번째 축하를 하고 말았다. 영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혼자 알아서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
우리 둘째는 말이 늦었다. 2월생인데 네 살이 되어도 말을 안 했다.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아픈 곳을 치료받는 것보다 말을 못 한다고 걱정이다고 하소연부터 하고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집에 도배사를 불러 도배를 하는데 엄마인 나는 어린 셋째를 등에 업고 별 도움이 안 되는데 말도 못 하면서 도배사가 뭐가 필요한지 미리 알아서 잡아드리고 가져다 드리고 한 마디 요청도 없었는데 숙련된 도우미처럼 척척 알아서 도왔다. 그래서 그 도배사가 감동을 하였고 어른 뺨치는 신기한 아이라고 칭찬했었다. 우리 둘째는 매사 그랬다.
우리 집에서 있는 일을 말하면 그냥 자기 자식이니까 과대포장하듯 말한다고 할 것 같아서 매사 감동적이었던 둘째의 행동을 설명을 아꼈다. 도배사는 물론이고 이모가 집에 와서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연신 했었다. 배려도 배려지만 어린아이가 말도 못 하면서 행동은 어른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성숙한 행동을 했었다. 원래 말을 못 했으니 묵묵히 한다는 말은 좀 그렇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데도 집을 나서게 되면 둘째가 다 챙기고 문을 잠그는 것까지 확인하고 가장 마지막에 따라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아이가 성장하면서 항상 앞장서고 회장선거에는 단골로 나가고 영재들 사이에서 단연 으뜸으로 잘해서 영재들과 그 보호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단상 위에서 설명하고 TV에서 방영하는 전국 영어토론대회를 나가서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하고 말을 못 했었던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빼어나게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아이 셋 중에 엄마와 통화하면 가장 다정하게 말을 하고 중요한 판단을 요하는 일이 있으면 둘째에게 상의하면 명료해지는 경우가 많기에 엄마인 내가 아들인 둘째에게 조언을 구하곤 한다. 말이 늦었던 둘째의 대 반전 성장기가 아닐 수 없다.
첫째와 셋째는 직업을 가졌다. 이후 셋째는 현재 군복무 중이지만. 그런데 우리 둘째는 군복무를 마치고 아직 공부 중이다. 그 어떤 직업을 갖던 우리 둘째는 훌륭한 사람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좀 힘든 시간을 지내고 있지만 잘 극복하고 성숙하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성숙하고 현명하게 성장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감동할 정도였으니 본인을 믿고 이 시기를 잘 이겨내길 바란다. 타고난 성인군자라고 생각을 할 정도의 성숙한 사람이다. 뭘 가르치지 않았는데 이미 상상 그 이상의 멋있는 행동을 한 아이였다. 삶의 과정 속에서 본모습을 오염시키지만 않으면 되는 아이다.
둘째의 생일을 맞아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