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아하는 것 그리고 또 그 무엇.
올해부터 새로운 룸매가 생겼다. 그 친구는 나의 이십 년 전 마음을 많이 갖고 살고 있었다. 그 친구도 "이런 마음까지 함께 누군가와 얘기 나눠본 적 없었다.", "저를 꿰뚫고 있는 듯하다." 이런 표현을 했다. 꺼내보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뱅글뱅글 맴도는 걸 시간의 이불 밑으로 넣어두고 훌쩍 십 년 이십 년을 보낼 수도 있다. 그 마음을 꺼내서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흰머리가 짙어지고도 스스로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산 경우도 있다. 애초에 그걸 궁금해하지도 않고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본인도 그걸 찾고 싶어 했고 본인이 낳은 아이도 그걸 스스로 가급적이면 빨리 찾아서 그 길을 가길 원했다. 그리고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즉 직업을 자기 주도적 성향의 직업을 갖길 원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내면의 바람이 뭔지 충분히 공감하고 더 쉬운 '직업에 대한 고민'을 현실성과 즉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깊이 있게 대화했었다.
나의 이십 년 전, 지금 이 직업에 입문하기 전 전업주부였다. 그 시절 고민이 많았었다. '우리 엄마의 딸 나 김영미는 어디에도 없고 이렇게 내 이름 불려질 일도 이제 영원히 없게 되는 건가?' 그런 고민과 '내게 현재 시점에서의 1번이 뭔가? 그것에 초집중하자.' 이런 고민들이 매시간 함께였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는 말 중에 "현재 내게 1번이 뭔가?"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스스로 그건 아이들을 잘 키우는 거라고 했다. 딱 그 질문과 그 답을 나도 똑같이 했었다. 이렇게 결이 같은 고민을 하며 사는 친구가 나와 한 공간에서 살게 된 게 행운이었다.
그건 그거고 요즘 난 내게 내가 이제 할 일 다 한 사람처럼 단정 짓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내 생명에 대한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사람은 누구도 아니고 나라는 걸 다시 깨우치게 해야 한다는 걸 의식하게 되었다. 우연히 참 많은 힘든 과정 속에서도 굳건히 해낸 사람이 한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왜 그렇게 까지 그렇게 하셨나요?" 그 답은 "스스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였다. 딱 그거다. 땅굴을 파듯이 나를 합리화시켜 가며 나의 게으름이 절정에 다을 수 있도록 나를 만들고 있었다. 곧 정년이다. 이제 더는 '최선'이란 단어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 이제 제대로 자유롭고 싶다. 등등 내게 빌미를 주고 있었다. 결국 게으름 피워도 된다는 면죄부를 쓰는 중이었다. 근데 그 와중에 그분의 인터뷰를 들어버렸다.
이십 년 전의 나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현재 생물학적인 나이에 너무 나를 가두며 나를 꿈꿀 기회조차 막는 내가 맞나 싶어졌다. "정신 차려, 김영미! 누구 마음대로 너를 묻어버리는 거야?" 딱 그런 상황이다. 스스로 엄청나게 게을러지려고 땅굴을 파고 있다. 뭘 하려고 했다가 그걸 날마다 미루고 있다.
누군가가 찾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걸 나는 찾았다. 잘 그리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게 그림이다. 그리고 나의 정신과 주치의 역할을 해주는 글쓰기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에 한 인터뷰를 보고 내가 퇴치해야 하는 게 '게으름'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주범이 바로 내속에 있는 게으름이란 걸 찾았다. 그게 나를 점령하려들면 이곳에 신고해 버릴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