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보다

5. 내 생각이 옳은 것일까?

by 바보

텔레비전에서 반려견들이 나오는 프로를 즐겨 본다.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주로 개들의 문제 행동을 살피고 그 원인을 밝혀내는 데 관심을 갖고 시청하고 있다. 개들은 잘못 받아들여진 정보 때문에 문제 행동을 하게 되고, 훈련사는 개에게 입력된 생각을 바꾸어 주어서 문제를 해결한다. 훈련사가 보호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알려주면 보호자는 문제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고 훈육으로 개들의 생각을 교정한다. 그렇게 되면 보호자를 괴롭혔던 반려견의 문제 행동이 사라지고 개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프로를 통해서 나는 개를 보면서 사실은 개가 아닌 사람을, 나를, 본다. 개와 사람은 다르다. 그러나 다르면서도 여러 면에서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하굣길에 전봇대 위에서 울고 있는 까마귀를 본 적이 있었다. 까마귀를 보면 사람이 죽는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식구들이 걱정이 되어서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엄마와 동생들은 집에 있었지만 아버지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식구들이 무사했는데도 내 머리에 입력된 까마귀에 관한 잘못된 정보는 오랫동안 수정되지 않았다. 나는 대체로 내 머리에 들어오는 정보와 지식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리고 지식과 생각이 많을수록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생각과 감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사는 게 바른 삶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앞만 보고 달리던 발길이 멈춰지고, 바깥으로만 향하던 시선이 안으로 돌려지게 되었을 때, 내가 살아낸 지난 시간에 대해 적잖은 후회와 자책이 밀려들었다.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원인을 파고들어 보니까 머리에 주입된 생각에 지배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내 머리에 들어와 있는 온갖 정보와 지식과 생각들이 과연 진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그 질문을 하게 되었을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진실하다고 꽤 오랫동안 믿었다. 그러나 교과서에 있는 내용도 뒤바뀌기 쉽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학 지식마저 반대로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군사독재 시절을 살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면에서 내 머리에 그릇되게 주입된 것이 많다는 사실은 비교적 일찍이 알아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내 귀에 닿는 정보를 대체로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물러나고 외부와의 접촉도 줄어들면서 세상과 자신을 찬찬히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 보게 된 세상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많이 달랐다.

잘못된 생각에 휩싸여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행동은 반려견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빈번하게 저지르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끌려다니며 살아간다. 나 역시 내 생각과 감정에 갇혀서 살았다. 은퇴를 하고 관찰자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각이나 감정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생각과 감정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주인이 아니라 나를 찾아와 잠시 머물렀다 가버리는 손님이다. 내 생각이 잘못된 줄 모르고 내 생각과 감정에 지배를 당하면서 살았다. 머지않아 기계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초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꿈속에서 지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꿈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굉장히 괴로워했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 ‘아, 나는 이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안도를 했고 내 안에서 일어났던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사라졌다. 현실에서도 내 생각과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꿈속에서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인생의 운전대를 생각이나 감정이 아닌 내가 잡아야 한다는 것을 퍽 늦게 알게 되었으니 나는 꽤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생각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생각을 부려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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