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정답을 찾아서
인생을 정답 찾기 작업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모른다는 것이 나를 갑갑하고 불안하게 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늘 끝에는 무엇이 있나? 죽은 병아리는 어디로 갔을까? 왜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걸까? 자라면서 질문은 숱하게 쌓여 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친척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 가운데 답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에 박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답을 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은 단순히 교과서에 적혀 있는 글자와 숫자를 전달하는 사람들이었고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나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대학에 가서 박사 학위가 있는 교수님들을 만났지만 그들에게도 적잖이 실망했다. 내가 설정한 터무니없는 기준에 맞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그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외모도 멋있어야 하고 행동도 바르고 품위도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학생 앞에서 실수도 하고 비열한 행동도 하고 궁색한 모습도 드러냈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외부 상황에 떠밀리고 흔들리면서 갈팡질팡 지냈다. 그래도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꽤 자신만만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혼돈에 빠졌다. 배치표대로 하던 아이들의 입시 지도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작 본인은 인생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하는 훈계와 지시 전달에도 심지어 교과 내용에도 의심이 생기고 과연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시험 문제 정답을 고를 때도 점점 확신이 없어졌다. 이게 답이라고 약속이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게 답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시인들이 자신이 쓴 시로 만들어 낸 시험 문제에서 아주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 그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작 학교 선생이 인류의 스승 흉내를 내는 거야? 하면서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아이들이 내신 성적을 받고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문제집을 뒤적여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점수를 매기는 직장인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때로 비명을 지르고 한숨을 쉬다가 직장에서 물러났다. 갑자기 주어진 넉넉한 시간에 환호하면서 이곳저곳 열심히 쏘다녔다. 어린이가 보는 세상처럼 모든 것이 반짝거렸고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시들해졌을 때 달리던 자전거에 브레이크를 밟듯 천천히 발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시간의 구석구석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것을 놓쳤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온 시간에서 벌였던 생각과 행동에 부끄러운 것 투성이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때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당시와 다르게 해석이 되는 일도 있었다. 단지 내가 변해서 달라지기도 하고 사회의 흐름이 바뀌어서 판단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면서 이게 과연 정답일까? 하면서 머뭇거렸던 것들이 그게 정말 정답이었니? 하고 지금에 와서 묻는 것들도 있었다. 정답을 모른다는 이유로 도전을 포기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회한도 적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오히려 잘 보이는 게 인생길이기도 했다. 직장에 다닐 때도 멀리 떨어져서 보려는 노력을 하기는 했다. 시간적 거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공간에서 멀어지는 것은 가능했다. 휴일이면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가는 방식을 자주 선택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곧바로 삶의 터전으로 회귀해서 잠깐 내려놓았던 일상이라는 걸망을 다시 걸머져야 했다. 몸은 멀리 떠나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마음이 떠나려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늘 바쁘게 살아야 했으므로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당연히 내가 벌이고 있는 내 인생을 멀리서 바라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년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지나온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시간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생각은 옳은 것일까? 내 선택은 바른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그 물음은 나 혼자만의 질문이 아니었다. 우주에 대한 의문과 인간의 고통과 불행에 대해 답을 찾는 일은 인간 문명의 시작과 함께 역사에 등장했고 뛰어난 학자와 사상가들이 가르침을 펼쳤다. 내가 찾던 정답이라는 것은 근원에서는 원래 없는 것이었다. 단지 무한한 시공간에서 내가 선택할 뿐이고 고정되거나 영원불변한 것은 없었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는 그것이 최고의 가치이지만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서는 다른 평가를 받는다. 정해진 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다는 게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그것은 다양성과 자유와 연결되어 있었다. 혼돈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질서는 우리를 속박하고 해칠 수 있다.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한다면 독선적이고 차별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인류가 무수히 겪은 일이었다. 우리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열린 세계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의 기준은 개인과 사회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답을 몰라서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정답이 없어서 자유롭다는 생각으로 정답에 대한 오랜 질문은 마무리되었다. 답을 모른다는 것은 캄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답이 나와 있는 세계는 각박하고 오히려 숨 막히게 답답할 수 있다. 그리고 무작정 답을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진즉에 깨달았어야 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허다했다.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을 부여안고 있을 수 없는 답을 찾았다. 온갖 질문에 휩싸여 정신없이 돌아다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데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했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정답이 아닌 진리나 진실을 찾는데 마음을 두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