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보다

7. 어른이 된다는 것

by 바보

나는 몇 밤 자면 형아가 되는 거야? 난 이제 아가 안 하고 아저씨 할래. 아이가 어릴 때 하던 말이었다. 어서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져 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늙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도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떠밀리듯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하면서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었고, 아직 아닌데, 하면서 엄마가 되었고, 아직 아닌데, 하면서 직장에서 은퇴했다. 급기야는 아직 안 살아보았는데, 하면서 노인이 되고 말았다. 직장에서도 어른 자리를 사양했을 뿐 아니라 누가 나에게 어른이기를 기대하면 도망을 갔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이 남달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모자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어른일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세상 돌아가는 게 잘 보여서 바른길을 선택할 줄 알고 자신이 한 언행에 대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없이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노년에 이르도록 세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면서 갈팡질팡했다. 행동과 말에 대해서 조심을 하는데도 돌아서면 후회하고 반성하고 때로는 자책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순간에도 나는 세상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뒤로 물러서는 길을 자주 선택했다.

세상을 다 알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세상을 알지 못한다는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른이 되기를 주저했다. 내일 날씨가 어떨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일 날씨가 맑으면 맑아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나쁜 점도 있을 것이고, 비가 오면 싫은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 일이 내게 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손해처럼 보이지만 훗날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지금 좋아 보여도 나중에는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완벽이란 잘하는 게 아니라 내게 오는 것을 물 흐르듯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순간순간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름 바르게 처리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일은 내가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면 되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아주 힘들었던 날, 홀로 텅 빈 교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학교가 언덕에 있어서 시내가 멀리까지 내려다보였다. 나는 무엇에 쫓겨 여기에 서 있는 걸까? 나를 궁지로 몰아세운 것은 무엇일까? 머리는 복잡했고 가슴은 답답하고 마음은 처량했다. 이곳에서 주인은 누구일까? 설립자? 아니다. 그는 부정부패로 오래전에 쫓겨나서 그가 세운 학교는 공립학교로 바뀌었다. 교장? 그도 아니다. 그는 곧 퇴직을 할 것이다. 동료들? 그들이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년이다.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야 한다. 학생들? 학생들도 3년이면 떠나야 한다. 아무리 따져 보아도 주인은 없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일까? 대통령? 아니다. 그는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야 한다. 재벌? 당연히 아니다. 자꾸 따져 보았더니 직장의 주인도 나라의 주인도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낀 하늘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지구의 주인은? 우주의 주인은?

천상천하유아독존, 이 말을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퍽 좋아했다. 바깥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타인에게 부림을 당하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왜곡되고 와전되어서 독선적인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지만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언어였다. 천상천하유아독존, 가만히 읊조리면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것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대자유 속에서 당당하고 평온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가 이 우주의 존엄한 주인이다. 그렇지만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과 괴로움에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인이 되는 길이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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