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뻐쿠기 우는 동네
전에 살던 곳은 계양산 북서쪽 산자락에 새로 들어선 빌라촌이었다. 꽃향기, 숲 냄새 가득한 그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전세 사기로 고생하다가 한겨울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동네에는 이사할 만한 셋집이 없었다. 보증공사에서 통보한 기한이 임박해서 하는 수 없이 허겁지겁 이사한 곳이 이곳 오래된 아파트였다. 낡고 좁은 집이 답답해서 겨울만 나고 다시 이사할 생각이었다. 동네 대형마트에 대한 인상도 낡은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전 동네에서 다녔던 마트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산뜻하고 깨끗하게 느껴졌는데 이사한 동네 마트는 몸집만 크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똑같은 상표의 물품이 이전 마트에 진열되었을 때는 고급스럽고 예쁘게 보였는데 이사한 동네 마트에서는 너저분하고 구질맞아 보였다. 전철을 타러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도 때가 낀 것처럼 칙칙했고 이전 동네에서 나던 나무 냄새 대신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매섭고 찬 겨울을 겨우겨우 버티고 화창한 봄이 왔다. 황량했던 들판이 푸릇해지고 꽃이 피면서 차츰 이사할 생각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갓 이사를 왔을 때는 하루를 지내는 게 한 달처럼 길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날짜가 빨리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는 달력 위 날짜가 휙휙 달릴 것 같았다. 끝까지 버티다가 기한이 되면 이사를 가자는 게으른 생각이 자꾸 일었다. 계양산 북동쪽에 들어선 마을이라 이곳에서도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지난 동네에서 뻐꾸기 소리는 청아했는데 이곳에서는 목이 쉰 뻐꾸기가 울었다. 뻐쿡, 뻐쿡, 우는 소리에 뻐꾸기를 뻐쿠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목이 쉬어버린 뻐쿠기가 애달프면서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뻐쿠기가 사는 동네를 떠나는 대신 기한까지 편안하게 버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바꾸는 작업이기도 했다.
넓고 환한 새집에서 살다가 좁고 낡은 아파트로 옮겨왔을 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거주하는 게 아니라 벽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그 빌라로 이사 왔을 때도 한동안 그런 기분을 느끼기는 했었다. 몸이 땅 위에 있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다는 게 영 불안하고 괴롭기도 했다. 그래도 방에서 고개를 돌리면 넓은 하늘이 펼쳐져서 괜찮았는데 이곳은 시야도 앞동과 뒷동에 막혀있었다. 갑갑해서 못살겠다, 비명을 지르다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원효대사의 해골 물이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심외무법, 마음 외에 다른 법이 없다.” 내 처지에 딱 맞는 가르침이었다. “좋다, 싫다, 아름답다, 추하다, 넓다, 좁다,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분별심에서 벗어나라.” “분별 의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라.” 분별심을 화두로 삼아 마음을 다스려 보기로 작정했다. 좁은 아파트에서의 답답함이 조금씩 물러났다.
구별 짓기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집 때문에 시작된 작업이었다. 그때는 오래된 동네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건설사에게 포획된 언론들과 유튜버들이 월거지, 전거지, 엘사, 휴거 같은 차별적인 용어를 쓰면서 국민들을 선동했다. 그들은 서울과 지방, 서울 중에서도 강남과 타지역, 아파트와 빌라 등을 교묘하게 분리해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겼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 지으려는 인간의 허영심과 계급의식을 자극하고 이용해서 소비를 조장한다. “이 집을, 이 자동차를, 이 가방을 구매하는 당신이 상류 계급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구별 짓기는 결국 인간에 대한 차별과 혐오라는 부정적인 사고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전국적으로 아파트 건설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내가 살고 있던 동네도 재개발에 휘말렸다.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벌이는 잔인한 사기 행각을 난생처음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지옥 같은 그곳에서 버티면서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고 고통을 싫어한다는 면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노년에 맞이한 강제된 이사를 통해 글자로만 알고 있던 인간의 두 가지 마음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세상과 타인을 향한 차별심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이 그것이었다. 차별심과 분별심을 평등심과 평정심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새로 이사한 동네는 서울과 김포, 인천을 나누는 경계선 인근이어서 주변에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파트 앞에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매장에 진열해 놓고 판매했다. 여름철로 접어들며 농산물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이사한 동네가 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 수확한 감자와 고추와 상추 같은 것들이 소포장으로 진열되고 포장지에는 생산자와 원산지와 출하 일자가 찍혀 있었다. 출하 일자가 당일로 적혀 있는 옥수수를 사서 쪄 먹었는데 어릴 때 우리 밭에서 따온 옥수수처럼 부드럽고 달고 향기로웠다. 작고 구부러진 가지와 오이가 그 시절 우리 밭에서 자라던 가지와 오이를 생각나게 했다. 당일 수확 날짜가 찍힌 말랑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복숭아꽃이 만발했다는 무릉도원이 떠올랐다. 복숭아는 신선이 먹는 과일임이 분명했다. 전철역도 지난 동네보다 가까워서 돌아다니기 편했다. 어느덧 나는 새 동네의 좋은 점을 하나둘 발견하면서 정을 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