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보다

9.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by 바보

내 기억 속에서 최초의 싸움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짝과 벌인 몸싸움이었다. 얼굴에 손톱자국이 유난히 많았던 그 아이를 내 옆에 앉힌 것은 아마 내가 얌전하고 순한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가 왜 이빨로 내 팔을 물어뜯고 할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아이가 느닷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나도 그 아이의 팔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연이어 내 머리채를 잡아서 반사적으로 나도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달려들어서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그 아이는 씩씩거리며 눈을 흘겼고 나는 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른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팔에서 피가 흘러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 입으로 후후 불었다. 그 시절에는 학급 인원수도 많고 선생님이 이런저런 일로 교실에 머무르지 않는 시간이 길었다. 어른들은 모두 바빴으므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자랐다. 그 아이와의 싸움은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왜 그렇게 유치한 몸싸움을 했는지 참 창피했다.

그 뒤로 몸싸움을 벌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말싸움이나 감정싸움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사노라면 누구나 싸움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는 특별하게 기억날 만한 싸움은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싸움이라기보다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싸움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처럼 불시에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이유를 모르는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어떤 종류의 싸움이든 그 뒤에 남는 것은 수치심과 우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인간관계에서의 정답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궁지에 몰렸을 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답을 알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심리학 관련 서적을 뒤적이기도 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구태의연한 일상에 짜증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더 이상 젊은 날처럼 감동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신기하거나 환호할 일이 별로 없었다. 어느덧 나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언짢게 하는 것들,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들을 전부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채 안팎에서 일어나는 온갖 적들과 싸우며 지냈다. 그렇게 싸우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적을 상대하려면 영리하고 강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물러서 걱정이다. 어째 야무진 구석이 하나도 없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천성이 둔하고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고전 만화를 보다가 아, 이거다. 이게 내가 찾던 방식이다.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장자에 나오는 목계지덕이라는 이야기였다. 닭싸움을 좋아하는 왕이 당시 최고의 투계 사육사에게 자신의 싸움닭을 맡겨 훈련을 시켰다. 한참이 지나 왕이 사육사에게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지 물었다. 사육사는 “닭이 강하기는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을 때 그는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나 쉽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진중함이 있어야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조급함을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어서 안 됩니다.” 하는 답을 했다. 한참을 지나 왕이 다시 물었을 때 사육사는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닭이라도 그 모습만 봐도 도망을 갈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싸움에서 진정한 고수가 되려면 교만과 조급함을 버리고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완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다에서 파도가 출렁이듯 늘 혼란스러운 게 세상이었다. 생명 있는 것들은 예외 없이 수없이 일어나는 적들의 파도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소란스러운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세상이 항상 고요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 억지스럽고 어리석은 바람이었을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파도타기처럼 세상의 흐름에 유연하게 자신을 내맡기는 훈련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파도에 맞서지도 이기려고 하지도 않고 흐름을 허용하고 저항하지 않는 마음 연습이었다. 목계지덕에 이어 내가 찾아낸 또 하나의 비법이 있다면 그것은 모기는 전생에 나의 어머니라는 티베트인들의 자비심이었다. 이번 생에서 나의 적은 어느 전생에 나와 여러 번 친척이었고 현재의 친척도 전생에 여러 번 나의 원수였을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포용심이 나를 놀라게 했다. 문제는 목계지덕이나 자비심이나 그 단어를 알고 그 뜻을 지식으로 배운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장자의 싸움닭처럼 기나긴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전 08화저녁에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