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by 즉흥곡

미국 캘리포니아 현지시간으로 오후 5시반,


퇴근이다!


인턴 나부랭이가 퇴근을 빨리해? 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은 정시퇴근을 지향한다. 한국이었다면 눈치 보면서 계속 앉아있었겠지만 오히려 이곳은 정시가 되면 알아서 짐을 챙겨서 나간다. 간혹, 일적으로 질문이 생겨 여쭤보려고 상사를 찾아가면 오늘은 빨리 가고 내일 와서 질문하라고 하신다.

그런 점은 참 마음에 든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그것들은 내일의 나를 위한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부터 집까지는 보통 12분에서 14분이 걸린다. 한국에서 면허만 있었고 운전을 하지 않았던 내가 지금은 살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큰일이 없는거 보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피곤한 몸이지만 퇴근 후에는 따뜻한 햇살과 물감을 칠한듯한 아름다운 색깔의 노을이 나를 위로해준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쉴 틈이 없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고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계란과 라면 뿐이었던 나는 미국에 와서 정말 생존을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부모님께서는 미국에 가기도 전에 맨날 라면만 끓여먹는거 아니냐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렇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반찬도 만들고 그날 요리를 사진으로 보내드렸다. 하루는 회사에서 점심이 나오지 않는 날이기에 도시락으로 된장찌개 가져간다고 하니 무슨 도시락으로 국까지 싸가냐며 주부 다 됐다고 그러셨다. 사실상 더이상 엄마의 잔소리같은 사랑의 말들을 듣지 않기 위한 나의 필살기(?)였다. 여기에 와서야 주부들이 왜 매일 메뉴를 고민하는지 알 것 같았다. 주부란 고달프고 외로운 자리이다.


그렇게 부엌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저녁밥도 먹고 도시락도 싸고 설거지까지 하면 대충 8시가 된다. 비로소 나의 휴식 시간이 시작된다. 미국에 온 첫 2달은 매우 돼지같은 생활을 했다. 모든 주방일이 끝나면 아, 나 고생했지? 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침대에 허리를 걸치고 누웠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다가 어느정도 잘 시간이 되면 씻고 잠에 들기 바빴다. 그렇게 2달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 하루는 내가 왜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리가 귀찮아서 거의 매일 저녁을 사먹고 들어오는 룸메에 비하면 나는 충분히 돈도 아끼며 능동적으로 잘 살고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에 오기전까지 수많은 클래식 공연을 다니며 다짐했다. 미국에 가서 내가 듣는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늘려보자, 서양 음악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공부해보자고.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행위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6월부터는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은 살도 빼고 새로운 클래식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최적의 취미였다. 물론 헬스장이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늦은 시간 미국의 길거리를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기에 팬스로 둘려 쌓여있는 아파트 주차장을 회전초밥마냥 빠른 걸음으로 1시간 반 정도 걷기로 했다.


KakaoTalk_20230627_142242552.jpg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노을


1달을 그렇게 걸으며 (살은 5키로가 빠졌다^^) 새로운 클래식 음악들을 듣고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든 것이 새로울 뿐이다. 취미로 바이올린을 하고 있었지만 클래식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던 것은 21년 여름 레슨 선생님께서 주신 초대권을 받고 나서였다. 그렇게 클래식과 사랑에 빠졌다. 그 이후 반년은 아름다운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소품집을 들으며 점점 불길이 타올랐다. 지금은 바이올린 협주곡보다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등 매일같이 새로운 곡들을 접하지만 클래식의 세계는 너무나도 방대하기에 아직도 들어보지 못한 곡과 들어보고 싶은 곡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나에게 주어진 아니 내가 만들어낸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소중 할 뿐이다.



KakaoTalk_20230627_144307457.jpg 예밀 길렐스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그의 강력한 타건이 매우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비슷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없던 시간도 만들어낸다. 맛집투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명한 식당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1시간 2시간 웨이팅도 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하루 24시간. 그러나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무언가를 하나 둘씩 채워넣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물론 내가 인생을 엄청 대단하게 살고 있기에 이 글의 제목을 저렇게 지은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며 지금도 계속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한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내가 하고싶은 것이 10가지 있다면 나는 결코 10가지를 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좋아하는 5가지라도 하기 위해서는 5가지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며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생계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하루를 꼬박 바치고 눈을 잠깐 붙인 후 이른 새벽부터 또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이 없다고 핑계 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응원하고 박수쳐주고 힘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진짜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번 하루를 되돌아보자. 내가 진짜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내가 진짜 좋아는 하지만 시간을 내고 있지 않는 것인지. 나도 그랬다. 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클래식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고, 쉴 시간이 없다고..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낸 소중한 시간은 결코 헛되이 흘러가지 않을것이다. 결국 그것이 나중에는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는 오늘도 걷고 계속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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