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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ug 08. 2024

나의 소유욕은 진행형입니다

때때로 지난 날을 떠올리는 일상 2


오늘따라 화장대에 놓인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유독 신경이 쓰입니다. 립스틱, 립글로스, 립밤… 대충 세어봐도 한 스물 남짓은 되어 보입니다. 딸 아이는 저것들을 다 쓰는 걸까? 저녁에 딸 아이에게 물어보고 쓰지 않는 것들을 따로 모아 제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다가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값비싼 화장품을 갖기 위해 열중했던 저의 20대 시절 기억이었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학년을 지나 어지간하게 고등학생 티를 벗고 자유를 만끽하는 일상에 자연스러워질 무렵, 저의 관심사가 된 것은 화장품이었습니다.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화장품이 몇 개 있기는 했는데, 친척 어른들께서 주신 것들이라 어쩐지 컬러가 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종류별로 구색이 갖춰져 있지도 않아서 세련된 화장을 꿈꾸는 제 성에 차지 않았지요.


그 시절, 제 눈에 들어온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음악대학 3층 연습실에 갈 때면 종종 마주치는 관현악과 학생이었습니다. 분명 저와 같은 나이로 보였는데, 제가 보기에 그녀의 패션 감각이나 화장법은 남달랐습니다. 매끈하게 바른 파운데이션 음영과 (그 당시 유행했던) 짙은 입술 윤곽선, 특히 눈매를 돋보이도록 그린 아이라인은 그야말로 예술이었습니다. 화장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제가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눈 주변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어버리기 일쑤였던 아이라인 그리기를 그녀는 어쩌면 그렇게 능숙하게 그릴수 있는 걸까요? 저의 관심이 ‘그녀의 눈’에 꽂히자, 저는 음악대학 건물의 어디를 가나 그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은 어느 날 아침, 그녀가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치켜뜬 눈으로 손바닥만 한 거울을 응시한 채 조심스럽게 아이라인을 그리는 그녀의 모습은 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녀의 검지와 엄지손가락 사이에 있는 아이라이너는 제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제품이었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그 아이라이너’를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프랑스산 화장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백화점 1층 화장품매장이나 온라인 몰에서 사치스럽지 않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지만, 1995년 그 시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이었던 제가 가지기에 프랑스산 화장품은 그야말로 값비싼 ‘명품’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포기할 법도 했을 텐데 그 당시 명품 화장품을 갖고 싶은 저의 소유욕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명품 화장품을 쓰는 학생들에게 입소문이 나 있었던 학교 근처 화장품 가게를 찾아냈고, 드디어 그녀가 쓰던 명품 아이라이너를 사고야 말았습니다.


큰맘 먹고 현금 인출기에서 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을 꺼내던 손, 어색한 표정으로 외제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던 모습, 내 것이 된 명품 화장품을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한동안 가방에 모시고 다니던 모습… 명품 아이라이너를 가지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다 보니 그 시절 저의 간절했던 소유욕이 생생하게 떠올라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저를 위한 화장품을 사는 일이 잘 없습니다. 화장을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딸 아이가 사 놓고 쓰지 않는 화장품으로도 충분하거니와 이제는 화장품이 저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대상이 아닌 까닭이겠지요. 그러나무소유를 설파하는 어느 종교인처럼 저의 소유 욕망이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른 모양의 ‘명품 아이라이너’가 제 안에 살아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보이는 무언가를 갖기 위해 욕망을 불태웠다면, 그 시절을 넘고 넘어 살아온 지금의 저는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소망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어찌 보면 소유욕의 단계가 더 고차원이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저는 오늘도 제 안에 진화하는 소유욕을 다스리며 살아갑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태도가 무소유인지 소유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소유하기 위해 도전하는 역동성이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이 도를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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