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음이 가르쳐 준 행복의 조건

여백을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눈(2)

by 휘파람휘

나는 종묘의 아침을 걸으며 여백이 주는 편안함을 느꼈다. 고요하게 비어 있는 마당은 단순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웅장함이 완성되고 있었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는 공간이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얼마 전 읽은 『행복의 기원』은 이 경험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책은 행복을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번져왔다가 사라지는 경험이라 했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이며, 진화적으로는 생존을 돕는 보상 체계라고 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만, 곧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다시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이른바 ‘쾌락의 쳇바퀴’다. 종묘에서의 만족감도 그랬다. 잠시 마음을 가볍게 했지만 곧 옅어졌다. 그러나 사라졌다고 해서 의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이 내게 여백의 힘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그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니까.


행복은 결국 ‘비워낸 자리’에서 드러난다. 디자이너에게 여백은 단순히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아니다. 여백은 본질을 드러내는 장치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낼수록 핵심이 선명해지듯, 삶에서도 더 많은 성취와 더 많은 관계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꼭 필요한 순간과 진심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만을 남겼을 때 마음은 단단해지고, 행복은 더욱 선명해진다.


종묘에서 마주한 여백은 단순한 건축적 미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덜어낸 자리에서 드러나는 본질’이었다. 『행복의 기원』이 말하는 순간의 행복은, 어쩌면 이런 여백 속에서 가장 깊게 체험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디자이너로서, 삶을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결국 여백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내 행복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종묘의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