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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Jun 20. 2023

지금 살고 있다는 건,
찬란한 존재 자체라는 것.

<재 위의 들장미> 시에서 얻은 삶의 지혜와 용기

사실 처음에 첫 줄은 이것이었다;
들장미는 고생대의 아침노을을 연상시킨다


최승호 시인의 <들장미> 중 나의 마음에 깊게 박힌 마지막 구절이었다.

나는 들장미란 꽃의 존재와 유구한 역사를 이번 시를 통해 음 알게 되었다.

재 흩날리는 철도변 옆에 피어있던 들장미는, 사실 철도가 들어서기 전 '들장미' 이름이 없던 시절부터 피어있던 존재였다.

누군가로부터 이름이 붙여지고, 남들에게 인지되지 않는 수없는 세월 동안 들장미는 이 땅에 존재했다.

그리고 꽃의 주변으로 수많은 생명체들 지나쳐 갔고, 오늘에 이르러 자신을 '들장미'라 부르는 인간들과 조우했다.

나는 이런 들장미의 존재를 통해 세상살이에 대한 많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들장미, 그 존재의 힘

들장미들은 영겁의 무수한 시간에게 스러지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과 문명의 멸망을 관통하며 이어져온 들장미들은 찬란한 고생대의 아침노을을 넘어 꿋꿋이 현실을 딛고 있다.

그리고 나는 들장미를 통해 고생대의 아침노을을 상상하게 된다.

찬란한 상징으로 각인된 들장미, 내 생각의 지평을 열어준 존재가 되었다.


사실 난 이 글을 쓸 무렵 졸업한 학교에 찾아가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쓸 심산이었다.

무한했던 열정과 기로 가득 찼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캠퍼스의 시간을 되짚어보며 어떤 열정과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어떤 실패와 시련을 딛고 지금에 왔는지를 적는 회고의 글을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쉽사리 글을 완성시키기 못했고 생업에 쫓겨 잠시동안 반토막의 글로 남겨두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힘들게 만드는 숱한 사건들이 지나갔고 사포에 깎이듯 마음에 많은 생채기를 얻었다.

그중 나를 가장 크게 괴롭힌 건, 나 자신의 '쓸모'에 관한 고민이었다.


과연 나 자신은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가

조직에서, 관계에서 나 자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어디서나 내 몫 이상을 다하고 싶었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많았다.

타인에게 도움이 될지 언정 짐덩어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로 한동안 머리가 아팠다.


그러던 중, 재 위에 피어난 들장미는 생각의 전환을 선사했다.

들장미를 통해 어느 순간, 난 너무 외부의 시선에서 나의 쓸모가치를 판단한 것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됐다.

남들이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난 값진 하루를 보낸 것 아닌가.

남들이 날 신경 쓰지 않더라도, 내가 조직에서 내 할 일을 다했다면 난 조직의 필요인원이 아닌가.

들장미는 들장미로 불리기 이전부터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 것처럼, 나 자신 또한 지금껏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존재였다.

어느 곳에 존재해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리고 나 자신이 이를 인지하고 있다면 난 존재의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들장미 같은 존재가 되려 한다.


자신을 기억하며 꿋꿋이 살아남아온 재 위의 들장미.

누군가에게 고생대의 아침노을을 연상시키는 존재.

그러므로 찬란함을 기억하며 하루하루생업과 생활에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찬란함을 연상시키는 상징이자 실존적 존재로 다시금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해 질 녘이면 공룡들은 고개를 들고
불길한 그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저탄장의 석탄 더미는 한때
양치식물의 숲이었다
고생대의 잿더미
무개화차는 수북하게 석탄을 싣고
탄광 지대의 거무스름한 철길을 지나간다
광부의 도시락과
술집에서 늙은 여자의 노래와
쌍굴 다리를 내려오던 코흘리개 아이들을 나는 기억한다

들장미는 재 흘러내리는
철로 변에 있었다
그것은 피사체가 아니었다
마음은 사진기계가 아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들장미라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
들장미가 있었다
그것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향기로운 한 송이 인간이 아니었다
우울하게 나는 다시 길을 갔다
그 뒤로도 이십 년을 무겁게 나는 걸어왔다

들장미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도 재 흩날리는 철로 변에
기우뚱하니 피어 있을까
황사 바람 불고 흙먼지 떨어지는 밤에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처음에
첫 줄은 이것이었다;

들장미는 고생대의 아침노을을 연상시킨다.

- 재 위에 들장미(최승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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