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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빵사의 손

by 연필로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퇴근 후 저녁 식사하면서 경기를 시청하며 즐겁게 응원하고 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트 500m의 이상화 선수가 올림픽 3연패에 도전했다가 은메달을 땄는데 아쉬운 마음과 함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화 선수의 굵은 허벅지를 보면서 그간 노력이 얼마나 고됐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로서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을 텐데 어쩌면 훈장과도 같은 근육질의 굵은 허벅지가 스피드스케이트 선수로써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마을 빵집의 건강빵 파트 파트장인 K 대리님의 손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손이 많이 부어있고 거칠어 보여 있었다. 그렇게 지나쳤는데 이후에 우연히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거친 손을 의식하고 보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궁금해졌고 살짝 물어보았다. 지나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K 대리님이 소소한 마을 빵집 생산직 직원 중에서 근속기간이 가장 오래된 편이라는 걸 알게 됐다.


K 대리님은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이 지원한 대학교에 아쉽게 떨어졌다 고했다. 재수와 취업의 선택 길에서 고심 끝에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제과제빵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과감하게 취업을 하기로 선택했다. 만약 자신이 대학에 아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소소한 마을 경영혁신본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뼛 속까지 성심인인 것 같다. 소소한 마을 빵집에는 자신의 꿈인 제과제빵사가 되기 위해 생산직으로 입사지원을 했는데 처음 입사하고는 매장 관리직으로 발령을 받아서 2년 정도 매장에서 근무를 했다. 생산팀으로 가서 빵을 만들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힘들지만 열심히 일을 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고비를 잘 넘기고 다행히 본인이 희망했던 생산팀으로 부서 이동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잘 다니고 있다고 했다.

반죽부에서 일할 때 무거운 반죽을 많이 들었는데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서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주다가 발톱이 깨졌던 적도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자기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빠르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참고 견디는 인내심으로

발톱이 깨질 만큼 힘든 고통을 견디는 근성으로

지금까지 묵묵히 일해 온 제빵사 K 대리님의 거친 손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TV 속에 나오는 유명하고 위대한 선수의 투혼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멋진 모습 뒤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존경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같이 먹었던 별거 아닌 빵을 만드는 어린 제빵사의 어떤 유명하지 않은 제빵사의 거친 손은 박지성의 발을 보았을 때처럼, 강수진의 발을 보았을 때처럼 위대한 프로선수가 온 국민에게 주는 만큼의 대단히 큰 감동은 아니겠지만

제빵사 K 대리님 그녀의 거친 손 또한 충분히 우리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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