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옛 제자가 생각나서
요즘 내가 일하는 학원에서는 소리 없는 갈등이 시작되는 중이다.
경력 많은 신입이 기존 학원 수업 방식에 대해서 '지루하다' 평했고, 원장은 그 신입의 스펙이 탐이 나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원장, 실장 등 직함 단 강사들에게 수업 방식이 지루하다면서 지루하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수업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변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라고 하면서...
사실상 기존의 수업 방식을 숙지하고 있다는 것이 관리자로서의 권위였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장의 그 뜬금없는 제안이 한 신입 강사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기분 탓인지 교무실 안에도 묘한 긴장 관계가 느껴진다.
지루함이 문제인가? 한시간 반 이상 진행되는 수업을 견디기에 이 학원의 대상 연령이 아주 어린 것은 사실이다. 힘겨운 수업을 이겨내며는 과정이 그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그에 관해 나름의 견해를 갖고는 있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다.
문제의 신입 강사는 아이들의 발언이 활발하게 오가는 난상 토론식의 수업을 지향한다고 했단다. 사실 그것과 기존 학원의 방식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통제가 되어야 습득시켜야 할 배경지식들을 인지시킬 여유가 생기고, 종종 아이가 좀더 깊이 있는 한줄을 쓰게 하기 위해 곤란해서 말문이 막히는 질문도 던지는 것이 우리 같은 강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학원의 기존 철학에 어느 정도 동의가 되는 입장에서 같은 신입이지만, 그 강사의 말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강사가 불만을 갖는 데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이 학원은 기존의 방식을 신입 강사에게 주입하려는 나름의 교육 과정을 갖고 있다. 그는 내가 보기엔 그 방식에 스무스하게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에서 타 학원 부원장을 거쳐온 그녀가 여기서 신입 강사 취급 받는 것도 모자라, 수업 방식에 지적까지 당하는 입장이니 쉽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시간을 나도 거쳤다. 40대에 강의 경력이 10년인 나또한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와 나의 차이라면 나는 이제는 강의 스타일이나 강의력에 대해서 별다른 피드백을 받지 않을 정도인 반면, 그녀는 근래에도 지적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 신입 강사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있긴 하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이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그 강사의 수업을 들었을 때 교재에 수행해 온 것을 보고 너무 단순하고 간단해서 어떤 식으로 아이들과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있는지 의아해졌다. 심지어 수업이 산만하다는 컨플레인도 받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산만한 수업을 지루함이 없는 수업으로 둔갑시켜서 자기 방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나의 의심 중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그런 얄팍한 마음이 원장의 마음을 그토록 흔든다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원장은 명문대 출신에 전공이 세 가지라는 그 강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명문대 출신과 다양한 전공이 실력과 노련함과 연계되는 것이라면, 그 저력을 좀 더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지 못한 상태임에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원장의 집착은 그저 소유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업? 난제다. 아이들마다 취향과 성향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독서 논술 수업은 치열한 생각이 기본인데 요즘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철학적 관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란 것이 무엇일까? 사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문득 떠오른 아이가 있다.
몇년 전 서울 학군지의 대형 학원에서 일하던 때이다. 업무적 문제 때문에 센터장께(상담팀) 갔다. 그녀는 업무적 문제를 상의하는 말미에 한 아이의 학부모가 그날 상담했던 내용을 내게 공유했다. 다른 과목 상담차 상담팀에 들렀는데, 논술도 함께 이야기를 나눈 터라고 했다. 그 학부모는 "논술 수업은 아주 좋다."라고 하면서, 아이가 다른 과목과 달리 논술의 경우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학교에 가져가서 쉬는 시간 틈틈히 읽고 수업에 참여한다고 했다. 함께 듣는 다른 과목은 고전 중인 아이였다. 상담 팀장은 논술만 그렇게 잘 적응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 같다.
"비결이 뭐예요?"
라고 내게 묻는 센터장에게, 내가 말했다.
"칭찬이요."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그림을 감상하고 상상한 내용을 가볍게 이야기 나누고 기록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사실상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으로 그림을 보고 있었다. 부분부분 가리키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아주 엉뚱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림과 개연성을 갖춘 생각이었기 때문에 "와, 그거 재미있다."와 같은 반응을 하며 칭찬했다.
한동안은 혼자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활동에 들어가면 가까이 가서 질문을 통해서 계속해서 생각을 떠올리게 하고 정리해주기도 했다. 소수의 아이들이 모인 반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아이는 차츰 수업에 적응을 해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장해나갔다. 느리긴 하지만 생각을 떠올려 문장으로 쓸 수 있게 되었고 꽤 매끄러운 문장으로 써내려갔다. 아이가 타고난 기질 자체가 비교적 성실한 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논술은 공부가 아니라 노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생각을 떠올리면 여지없는 지지와 칭찬을 받알 수 있는 교실은 아이에게 즐거운 놀이시간과 같다.
놀 듯이 책 읽고, 글 쓰고, 성장하는 수업.
내게도 이런 이상적인 수업을 실현할 수 있었던 좋은 인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