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김은주 외/ 한겨레 출판) 서평
저는 대부분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노동조합이 미얀마에 있는 노동조합보다 더 강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입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어요.
‘아웅’은 한국에서 건설 노동자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이다. 미얀마에서 온 그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보았던 노조 활동을 통해서 노조가 개인보다 강하고, 노동자의 개인의 권리를 요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자신이 일하고 살아가는 한국의 노조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노조가 미얀마보다 더 강력한가? 비교할 근거는 마땅치 않다. 다만 이 책,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속 노조는 한때 강력했을지 모르겠으나, 정권의 탄압에 뿌리째 흔들리는 중이었다. 대통령이 건설 노조를 조폭에 비유하여 ‘건폭’이라 명명한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양회동 열사의 희생 2주기를 맞아 발간된 책이다. 어떻게 건설노동자가 되었고, 어떤 이유로 노조에 가입했는가, 건폭이라 불리며 탄압당한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주제로 노조원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또한 건설현장의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서, 보다 광범위한 ‘노동인권’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2년 전 양회동 열사의 분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무슨 상황인가, 긴 혼란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전태일이 떠올랐다. 내 혼란의 근원이 거기 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사는 시대에는 노동자의 삶이 힘들려 분신할 정도의 일은 없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이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여러모로 역행하는 중인 상황. 이제 이런 사건까지 생기는구나, 참담했다. 한편 새삼스레 분신할 정도로 바닥을 치는 마음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폭력배에 비유 당하는 것이 그렇게나 고통스러웠을까?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 괴로웠을까?
이 책을 통해서 그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추측해 볼 수는 있었다. 건설노동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들이 처음 접한 노동 환경은 비슷했다. 위험천만한 현장, 겨울엔 추위, 여름엔 더위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에서 변변한 휴게 시설은커녕 제대로 된 화장실조차 없는 현장도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때론 휴일 없이, 법정노동 시간인 1일 8시간을 훌쩍 넘겨 일해야 했다. 그나마 땀흘려 일한 만큼 돈이라도 제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구술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건설 현장에 임금체불은 비일비재했다고.
그런 그들에게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준 것이 바로 노조였다.
노조가 현장을 정말 많이 바꿨어요. 기본적으로 하루에 10~12시간 이상 일하던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쉴 수 있는 게 저는 제일 좋더라고요. 또 주말에 일 안 하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요. 매년 인건비 인상이 되어 살림 계획도 어느 정도 세울 수 있게 됐어요. 노조하면서 이 세 가지가 제일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노조가 있으니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든든하지 않을까요?
노조가 생기고 조합원 수가 늘면서 임금 체불은 많이 줄었어요. 그전에는 개인이 싸웠던 거를 노조가 대표해서 요구하고 집회나 투쟁을 하니 번거로움도 덜해졌죠. 조합원 고용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어요. 건설 일은 보통 한 현장 끝나면 바로 실직자가 돼요. 생계를 유지하려면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늘 불안한 겁니다. 건설 노동자한테 임금 체불이 치명적이라는 말은 같은 맥락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이 힘을 합쳐 요구하니 바뀌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돈을 벌러 일터에 나왔지만, 일이 삶을 해치는 상태. 그들은 노조 덕분에 그 모순적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나가며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구술자 중 김태훈은 좋아진 현장 분위기에 노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조합원 웃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다.”라고 했고. 김부생은 “기술자로서 생긴 자부심만큼이나 근무 환경을 바꾼 노조 활동에도 자부심을 품게 됐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목소리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고, 그 기간이 한두 해는 아닌 듯 보였다. 그런데 그 긴 시간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교섭은 협박이 되고, 노조가 폭력배가 된 상황이었다.
전 정부의 노조 때려잡기는 단순히 노조의 자부심과 명예를 훼손한 것 이상으로 큰 타격을 입혔다. 우선 건설 현장이 노조가 없던 과거로 회귀했다.
"건설노조가 싸운 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복지, 정당한 임금과 임금 체불 없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탄압 이후 업체들은 노임 삭감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은 인격 존중도 못 받고 일자리를 잃고”있다. 심지어 여름 폭염에 현장에 “파라솔이랑 얼음물 좀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그것조차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임금 체불 문제 등 노조가 그간 해왔던 이들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노조가 나타나면 협박하러 왔냐는 말부터 먼저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은 이 책 속 어느 부분의 소제목 그대로였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노조 조끼를 입으면 누가 나를 안 좋게 보나 싶어 주위를 살펴보게 되기도 하고요. 예전에 집 앞에 노조 방송차를 대놓고 떳떳하게 타고 다녔던 제가 요즘은 그러지 못해요.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 떨어질 때마다 우리를 한 방 때리고, 또 때리고 그런 식이었잖아요. 두렵기까지 하더라고요. 이때까지 쌓아온 모든 게 탄압으로 무너질까봐 우려가 커요.
더욱이나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건수 만들려고 업체에 캐묻고 협조 안 하면 세무 조사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한다면서 “경찰이 하도 쪼아서 못 살겠다. 팀장님 명함 하나 경찰서 넘겨주면 안됩니까?”라는 말을 들은 구술자가 있을 정도로 가열한 수사가 이루어졌다.
구술자 김중근은 처음엔 탄압이 있더라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조사 과정에서 경찰과 건설사가 짜고 노조를 범죄자로 만들려 한다는 정황을 확인했고, 형사들이 황당한 내용을 가지고 계속 유도를 하나고 느꼈다고 한다.
참다못해 제가 조사받다가 고함을 쳤어요. 당신들 이거 불법 아니냐고, 안 한 걸 했다고 말하게끔 강제적으로 유도하는 거 아니냐고요. 안 했다고 답하면 다른 질문으로 갔다가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해요.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어떤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가두려는 것 같았어요
경찰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계급 특진이라는 달콤한 포상이 걸려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유가 되어 이렇게까지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경찰이 노동법을 모르는 것 같다.’ 조사받은 노조원들이 비슷한 말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노동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노조의 수사를 맡긴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의도를 갖고 시작한 수사이기 때문에 노동법을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는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촘촘하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구술자 김중근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수입이 3분의 1 정도 줄었어요. 이번에 몇 달씩 놀고 있어요. 30년간 일해왔지만, 이렇게 길게 놀아본 건 처음이에요. 모든 게 공안 탄압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에 재판받느라 일할 시기를 놓쳤어요. 벌써 1년이나 지났어요. 30년을 쉬지 않고 일하다가 놀게 되니까 생활이 무의미해요.”
이 모든 것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이들을 향해서 칼날을 휘두른 전 정부는 그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을까? 무지한 채로 휘두른 칼이 가장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한 자에게 힘이 센 칼을 쥐어 주어서는 안된다.
지금 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이 방을, 집을, 공간을 지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벽돌과 시멘트를 나르고, 높고 위험한 난간에 매달리고, 무겁고 복잡한 장비를 다루었을까요? 새삼 그들 노동의 숭고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은 단순히 집과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피, 땀, 눈물로 삶의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의 첫 장, 이탄희 전 의원의 추천사에 쓰인 내용이다. 사실 이 책을 살 때까지만 해도 가혹한 탄압의 이야기를 실랄하게 쓴, 오래전 읽은 『의자놀이』(공지영, 휴머니스트) 같은 책인 줄 알았다. (그 책을 읽고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실랄하다고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말 몰랐다. 읽은 지 워낙 오래되어 모든 장면이 다 기억이 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래서 실랄하다는 개인적인 평가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님을 밝힌다) 나는 이미 분노하고 충격받을 준비를 하고 이 책을 펼친 셈이다.
그런데 이탄희 전 의원의 추천사에서 느껴지듯 이 책에는 건설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고 보면 한 번도 건설업을 하는 사람에게 왜 그 일을 하는지, 그 일이 어떤 의미인지 묻지 못했다. 건설업이라고 하면 대학 시절 남자 선배나 동기들이 방학 때 학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나마 딱 한번 자기가 지은 건물에 대해 말하며 눈을 반짝이던 어떤 분을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눈동자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이 책의 구술자의 눈이 그의 눈과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제 일에 자부심이 큰 편이에요. 일하면 할수록 그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기술자잖아요. 제가 건설에 참여한 건물을 볼 때면 뿌듯함도 생기고 기분이 좋아요. 상가든 아파트든, 부산과 경남 지역 여러 건축물을 올렸다는 자부심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노가다가 아니라 기술자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우리를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죠.
이 책에서 등장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정직하게 몸으로 일해서 땀흘려 돈을 버는 일에 대한, 기술과 결과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내국인 노동자만은 아니었다. 아웅은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집을 디자인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면서 건설일만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참여한 건물 앞을 지나칠 때면 흐뭇한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건설 현장에 있을지 모르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만큼은 같았다. 결국 그것이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저는 평범한 가장이에요. 낮에는 현장 가서 일하고 퇴근하고는 가족들하고 소박한 저녁 같이 먹는 게 전부죠. 제가 특별하게 대단한 사람이나 투사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에요.
구술자 김태훈의 말에 다시금 제목을 읽어본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그들이 노가다꾼도 건폭도 아닌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