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청산했으나 끝내 남는 말
서울 수도권에서 자취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언제나 단박에 되지는 않았다. 월세의 예산을 많이 잡으면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삶이 너무 힘들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최소한만 쓰려했다. 그렇게 내가 정한 예산은 번번히 시세에 미치지 못했다.
처음 집을 구하려고 했을 때였다. 당시 홍대 인근 셰어하우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집을 구하고 싶었다. 월세를 셰어하우스에 내고 있는 정도에 맞추고 싶었다. 인근 부동산에 들어가서 내가 생각한 금액을 말하자, "은평구로 가보시는게 맞을 것 같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대로 은평구로 갔으나 그 금액으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경기도로 내몰리듯 이사를 갔다. 그 선택이 잘한 것이라는 것은 다시 서울에 집을 구하면서 알게 되었다.
9년 동안 경기도의 한 집에서 지냈다. 그러나 원래 하려던 일을 포기하고, 직장의 변동이 생겨 서울로 나와야 할 상황이 되었다. 결국엔 회사에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할 장소인 영등포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결심했을 때, 첫 이사보다는 많은 월세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매물을 보러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그 금액이 서울의 시세보다는 낮은 금액이라는 것을. 결국엔 30여개의 매물을 보게 되었다. 희귀한 주거의 형태도 꽤 보았다. 고시원만한 방에 에이포 용지만한 창문, 그나마도 벽뷰라 채광은 기대할 수 없었다. 문만 열면 바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골목인 곳도 있었다. 가게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 곳인데 여자 혼자 살았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 두세 군데 찾았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중랑구의 원룸 아파트가 아닌 영등포 신길동의 1.5층 원룸을 택했다. 낯선 중랑구보다 서울 한복판이고, 익숙한 동네인 신길동이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가보니 생각보다 지저분한 내부, 군데군데 붙어 있는 바퀴벌레약, 도저히 말이 통할 거 같지 않는 집주인의 친척인 연세가 많은 관리인을 보면서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 내내 고민이 되었다.
(다행이 바퀴벌레는 없었지만) 여름에 테러에 가까운 곰팡이를 마주해야 했을 때에야 아, 내가 틀렸구나 싶었다. 에어컨은 냉매가 없어 거의 무의미했다. 곰팡이를 보고 그 집과 재계약할 의사가 싹 사라졌으므로, 나는 온종일 문을 열어 놓고 생활하다가, 밤이 되면 선풍기로 여름을 났다. 직장 때문에 이사간 집이었으나, 얼마다니지 않고 그 직장을 퇴사하게 되면서 내내 백수로 지냈기 때문에 내내 집안이나 도서관에 가 있었다. 심리적으로도 환경적으로 거의 지옥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서울에 온 목표는 이미 포기했고, 그나마 작은 커리어라도 하나 가져가자 싶어 연장한 타향살이였다. 그런데 백수로 지내게 되면서, 비싼 월세를 내고 서울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가는 상황이라 새 세입자를 구해야 했고, 두 달만에 집이 빠졌다. 또 한명의 희생량을 그 집에 넣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부러 상대가 이사오는 날짜에 맞춰서 이사나가려했는데, 집안 정리가 필요하다면서 이사를 이틀 일찍 나가달라고 했다. 편의를 봐주어 그렇게 조정했다. 그런데 보증금은 이후 세입자가 들어오면 지급한단다. 이사 나가는 날 받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계약기간 다 못채웠으니 바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집주인과 관리인이 고집을 피웠다. 관리인은 "부동산에 전화해서 계약 취소하겠다고 하면 너는 어쩔거냐?"라는 식으로 나왔다. 아, 생각해도 참... 황당한데 아무튼 그랬다.
보증금 지급 분쟁으로 감정이 상하니 도어락 비밀번호를 가지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나는 여성 혼자 사는 1인 가구였기 때문에 세입자를 구하는 과정에도 비밀번호를 건네지 않았다. 내가 거의 매일 집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인에게 건넬 이유가 없었다. 내가 다 응대하거나, 부동산에서 방문하려는데 내가 집에 없는 경우라면 부동산에게 알려주고 이후 비번을 바꿀 생각이었다. 그런데 관리인은 이사 가기 일주일전부터 비번을 내놓으라고 전화를 해댔다. 이사 가는 날 알려드린다고 했더니, 미리 달라는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했더니 관리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는 아니다. 남의 집 살면서..."
남의 집이라...
세입자119,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상담 등을 통해서 보증금을 받지 못했을 때의 행동 대응의 계획을 해둔 상태였고, 그 사실을 알렸더니 겨우겨우 보증금을 받을 수는 있게 되었다. 관리인이 이사나가는 날 집을 확인하러 와서 보였던 행동도 참 황당했지만 논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그냥 접어두겠다. 마지막까지 최악이었던 집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지만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는 말이 있다.
'남의 집에 살면서.'
세입자에게는 프라이버시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리지 않을 자유가 없는지 몰랐다. 빌린 집이지만, 법적 절차를 지키고 보증금과 월세를 내며 '내가 살던 집'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다들 집을 사려하는구나. 새삼스런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