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세계의 조용한 혁명가, ‘선꼬거’

『내 친구 꼬마 거인』로알드 달 / 시공주니어

by 오랜


고아원의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었습니다. “이 세상 어린이와 어른이 모두 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시커먼 어둠의 존재들이 죄다 은신처에서 쏟아져 나와서 세상을 장악하는, 아주 특별한 한밤의 시간”, 마법의 시간입니다. 소피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무언가가 건너편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시커먼 것이……. 커다랗고 시커먼 것이 ……. 굉장히 크고 굉장히 시커멓고 굉장히 길쭉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내 친구 꼬마 거인』의 주인공 소피와 ‘선꼬거’(선량한 꼬마 거인)는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선꼬거는 커다란 손으로 소피를 낚아 채서 거인의 나라로 데려갔습니다. 소피가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동네방네 거인을 보았다고 말하고 다니면 거인의 입장에서 난처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거인의 나라는 작은 꼬마가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인간을 ‘콩알 인간’이라 부르면서 잡아먹는 식인 거인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거인 선꼬거


선꼬거는 식인 거인 나라에서 유일하게 식인하지 않는 거인입니다. 오히려 좋은 꿈을 유리병에 넣어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행복한 꿈을 불어 넣어주는 일을 하지요.


소설 속에는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한 말 중에 자신이 명예를 중요하시 한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식인이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짐직해볼 뿐입니다. 그러나 한 사회의 문화나 규율, 관습 같은 것을 깨고 홀로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선꼬거는 그 나라 거인들 중에서도 작은 편입니다. 보통은 그보다 두 배나 키가 크지요. 그는 다른 거인들에게 존중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난감처럼 던지고 노는 대상입니다. 그런 그가 홀로의 길을 간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가 대단한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닙니다. 살면서 취할 수 있는 즐거움 중에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는 콩알 인간을 먹는 대신에 ‘킁킁 오이’라는 아주 맛없는 것을 먹습니다. 책속의 묘사로 떠올려보건데, 맛없이 없다기 보다 ‘역겹다’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법한 음식인데요. 그는 그것과 ‘후룹스코틀’이라고 하는 거인들의 음료만 먹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후룹스코틀은 아주 맛있는 음료수라고 하네요. 기포가 아래쪽으로 향하는 탄산음료라 먹으면 방귀를 참을 수 없다는 점이 좀 난감하긴 하지만요.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선꼬거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인 거인에게도 권리가 필요할까?


결국 소피는 선꼬거와 식인 거인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영국 여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여왕은 전후 관계를 파악한 후 검증을 거쳐 식인 거인의 존재가 사실임을 믿고 거인나라에 육국과 공군을 보냅니다. 그들은 식인 거인을 헬리콥터에 매달고 데려와 영국 한복판의 구덩이 안에 집어넣어 가둡니다. 구덩이 안에 별다른 시설이 이는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단지 킁킁오이를 먹을 것으로 제공하는 것 뿐인데요. 변을 볼 화장실은 있는지, 씻을 있는 공간은 있는지 알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게다가 콩알 인간이 손으로 팠으니 거인이 살기엔 턱없이 좁기도 하겠죠.


사람을 잡아먹는 잔인무도한 거인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그럴 법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동물원이 동물권 침해냐 아니냐를 논의하는 시대의 관점에서 다소 충격적인 처분이긴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소설을 원작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에서는 식인 거인을 무인도에 데려다 놓습니다. 킁킁오이를 충분히 주고 그 씨앗 한 박스를 던져 주며 그곳에서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라는 암시를 하죠.


그러나 어쩌면 아홉 명의 거인에게 섬하나를 내어주는 처분이 과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식인 거인의 권리도 존중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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