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도 조커가 필요한가요?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수지 모건스턴/ 문학과지성사

by 오랜

“너희들은 학원에 스스로 왔니?”


수업 중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 주인공인 소설이나 수필을 읽은 경우, 그 책의 독자인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살고 있나 점검해보자는 의미로 이야기를 나눌 때 꼭 들어가게 되는 질문입니다.


저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면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놀란 듯이 저를 바라보거나,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실까?’하는 얼굴로 빙긋 미소를 짓거나. 때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는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죠. 반응은 제각각인 반면 대답은 대다수가 비슷합니다. 스스로 오지 않았고, 대개는 엄마가 시켜서 왔다고 답하죠. 때로는 그럴 때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너의 삶에서 네가 선택한 것은 무엇이니?“



괴짜 선생 노엘의 선물, 조커


새 학기, 아이들은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함께할 노엘 선생님을 만납니다. 아이들은 실망합니다. 젊고 잘생기고 운동을 잘하는 선생님을 기대했는데 노엘 선생님은 뚱뚱하고 나이든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기대를 배반한 것은 모습뿐이 아닙니다. 노엘 선생님은 보통의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만나면 자리에 앉으라 지시하거나 이름을 설명하는 것과 달리 선물을 겁넵니다. 바로 노엘 선생님이 만든 조커 카드 꾸러미입니다.

조커란, 카드 놀이에서 궁지에 빠졌을 때 쓰는 카드를 의미합니다.

조커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준비물을 잃어버렸을 때 쓰는 조커’, ‘수업 시간에 군것질할 때 쓰는 조커’, ‘수업 시간에 춤추고 싶을 때 쓰는 조커’, ‘교과서를 빼먹고 안 가져올 때 쓰는 조커’, ‘조커 중의 조커’...


아이들은 조커에 대해 각자 반응을 보이지만 어느새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심지어 스스로 조커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속 괴짜 선생님, 노엘은 왜 아이들에게 조커를 선물했을까요?책의 내용을 통해서 추측해보건데 그것은 그의 교육관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사실 이 질문을 제가 수업했던 아이들에게 던졌을 때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수업 들어가자마자 부록으로 끼워져 있었던 조커 카드를 흔들며 신나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얌전히 앉아서 입을 다물고 말죠.


그럴 땐 같이 책을 펴서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속 조커들을 같이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궁지에 빠졌을 때 필요한 카드답게 그런 종류도 있습니다. ‘교과서를 빼먹고 안 가져올 때’, ‘준비물을 잃어버렸을 때 쓰는 조커’. 조커를 꺼내서 내밀면 선생님께서 그것을 말없이 챙겨주시기라도 하는 걸까요? 추측컨대 아마 혼나지 않는 정도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수나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혼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카드인 거네요. 다른 카드들을 살펴볼까요? ‘수업 시간에 춤추고 싶지 않을 때’,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조커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눈에 띄시나요? 바로 ‘싶다’입니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


조커의 명칭에 쓰인 보조 용언 ‘싶다’이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욕구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욕구. 결국 자기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을 때 쓰는 카드가 조커입니다. 어쩌면 노엘 선생님은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규칙에 따라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쯤은 조커 카드를 번쩍 들고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조커 외에 다른 선물도 있었습니다. 바로 책이었죠. 아이들은 그 책을 본 순간 책 읽고 싶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조커를 찾았으나, 그것이 없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토론 상자라는 것도 교실에 설치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주간 토론 시간에 깊이 논의하고 싶은 주제를 넣는 상자라고 하죠. 책을 읽는 아이들, 일상 생활 속에서 논의하고 싶은 주제를 찾아서 함께 토론하는 아이들. 이렇게 훈련된 아이들은 어떠 삶을 살게 될까요?


자신이 욕망을 알아차린 사람은 생각보다 고난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남에게 맡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겠죠.



스스로 선택하는 삶


다시 저의 교실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있냐는 질문에 섣불리 ‘네’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하나 물어보고 정말로 온전히 스스로 선택했는지 따져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명이 납니다.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지 못하거나, 알고 보면 부모의 선택이나 제도 때문에 하게 된 것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런 삶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스스로의 욕망을 모르는 삶. 아이들은 이런 삶 속에서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면 아이들은 궁지에 빠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어떤가요? 자신이 선택한 것들 중 온전히 자신이 주관으로 선택한 것이 몇이나 되나요? 주변의 시선이나 타인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 외에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막막한 상황에 도망쳐 선택한 것도 제외하셔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온전한 내 선택이란 것이 얼마나 적은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삶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그런 우리의 삶에도 조커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조커가 무엇인가?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를 통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묻는 것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