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내면으로 이끄는 소설의 힘

『유원』백온유 / 창작과비평

by 오랜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자기계발서처럼 인생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 지식이 담긴 글도 아니죠. 소설을 실용적 목적으로 읽는 사람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 외에는 거의 없을 겁니다. 소설을 재미있어 한다면 이런거 저런거 따지지 않고 읽겠지만, 세상에는 더 간편하고 재미있는 다른 것들도 많죠. 예를 들면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그렇다면 소설을 왜 읽어야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 작가께서는 소설을 VR 게임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들은 작품 속 가상 현실을 어떻게 하면 진짜처럼 느끼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고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저에게 있어서 소설은 확실히 그런 효용가치가 있어왔습니다. 잘쓴 소설과 함께라면 어떠한 삶이든 상상해낼 수 있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로도 그런 정도는 경험할 수 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장만이 인물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아마 4D영화로도 그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소설의 가치이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백온유 작가의 소설 『유원』의 주인공 유원은 집에 불이 난 당시 어린아이였습니다. 집에 갇혔던 그녀를 함께 있던 언니가 베란다로 던졌고, 기적적으로 한 주민(아저씨)이 받아낸 덕에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적과 같은 자신의 삶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모든 것에 뛰어났고, 성격도 착했던 언니는 자신을 살리고 죽었기 때문에 더 신격화되었고, 그런 언니 대신 늘 잘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받아낸 일로 불구가 된 아저씨가 여전히 가족의 언저리를 맴돌며 무언가 요구하고 있는 것 또한 고통스럽습니다. 부모님이 아저씨를 단호히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가족과의 관계도 그리 온전치만은 못합니다.


가끔 엄마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언니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니에 대한 무서운 자부심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다. 언니가 누군가를 살리고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언니의 죽음은 그저 그런 죽음들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 말이다. 그것이 다른 희생자 가족에 비해서 엄마가 일찍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원동력임을 잘 알고 있다.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는 유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의 하나 남은 딸이자, 언니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품이다. 이미 끝난 언니의 삶을 연장시키며 보조하는 존재.


외로움? 죄책감? 원망? 하나의 단어로 뚜렷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유원의 이런 감정을 소설은 면밀하게 포착하여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세세하게 묘사해 나갑니다.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유원의 삶 속으로 차츰차츰 걸어들어갑니다. 마침내 그녀가 스스로를 옭아매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갔을 때 저절로 응원하게 됩니다.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 나가라 마음속 깊이 외치게 됩니다.



그들의 곁에 선 다른 한 명은 누구일까?

베란다로 던진 아기를 누군가 받아서 극적으로 살렸다. 이것은 언젠가 실제로 존재했던 뉴스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 뉴스의 문장만을 보며 ‘대단하다.’, ‘신기하다.’ 감탄한 후 잊었을 겁니다. 어떤 삶은 그렇게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맙니다.


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 그렇게 살아난 이들의 삶 속에도 나름의 슬픔과 고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타자의 고통에 다가서는 일은 꽤 가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는 조금더 사람이 살만한 세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소설은 어쩌면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유원』은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그즈음 저도 사서 책장에 꽂아두었던 작품입니다. 미루다가 읽게 된 건 5년이 지난 작년 즈음이지요. 책장을 처음 넘기다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있었습니다. 표지에 여자 두 사람의 뒷모습이 있는데, 원래 그 그림에 한 명의 여자가 더 있었다는 사실. 내용을 읽어보면 어쩐지 표지의 장소가 옥상인 것 같고 그래서 두 사람은 유원과 옥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인물인 수현인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숨겨진 다른 한 명은 누구일까?

등장인물 중에 한 명, 특히나 죽은 언니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고 그것이 독자로서의 나 자신일지도 모르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삶을 짊어지고 사는 유원과 수현(책 속에서 수현도 순탄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죠)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지요. 정작 디자이너는 별 이유 없이 그림의 일부를 잘라 두사람이 모습만 표지에 담았을지도 모르지만요.



소설을 통해서 누군가의 삶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귀중한 경험을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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