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 1_2017년 10월 8일
“그간 하신 행동이 최선이었습니까?”
내 물음에 앞에 앉은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최선이었어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하, 이 사람 어떡하지? 그는 내 직장의 오너였다. 나의 동료는 오너의 말을 믿고 직장에 남았다. 그러나 끝내 퇴사했다. 동료가 철썩같이 믿었던 오너의 약속이 끝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너는 내색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진심을 알아차린 듯, 끊임없이 변명하고 또 변명했다.
오너는 50대의 남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높여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고 있는 사업에 관한 것도, 자기 자신의 성과에 관한 것도 늘 실제보다 조금 높게 더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했다. 그 말은 너무나 반짝거려서 사람들을 쉽게 속였다. 회사를 나간 직원은 그의 말에 속아 입사를 했다. 그러나 실제는 말보다 비루했다. 직원은 개선을 요구했으나, 여러 번 묵살당했다. 끝내 퇴사를 결심한 직원이 오너를 독대했다. 오너는 그제야 모든 것을 개선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마저도 실제보다 반짝거리는 허상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오너의 변명을 들으며, 나는 최선이 이렇게 비겁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문득 지난 시간에 나를 떠올렸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해 온 나 또한 오너처럼 비겁했던 것은 아닐까? 최선을 핑계삼아 나는 무엇을 외면하고, 덮어버렸나? 최선의 결과가 썩 훌륭하지 않은 이유가 혹시 그 때문은 아닌가?
나는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늘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내 기대치에 비해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이면 늘 ‘후회’가 밀려왔다. 언제부턴가 내 인생의 목표는 ‘후회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다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오너의 변명을 듣는 순간 나의 최선 또한 후회를 피하기 위한 면피였던 것을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일정 부분의 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이란 끊임없는 실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실수를 얼마나 책임지고 개선했으냐에 따라 한끝 정도 달라진 미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차이란 보여지지 않는 곳, 궁극적인 어떤 것에 가깝다.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못난 자신을 위로하며 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 눈 앞의 오너보단 나은 50대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