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짝

방황의가치3_2019년 12월 30일

by 오랜

“단짝 없어요?”


송년회 2차.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즈음, 작업실 동료 중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그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다.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대략 3년에서 4년 정도 글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속한 작가팀의 일원으로 팀의 리더이신 영화 시나리오 작가님의 제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수업 기수만으로 언뜻 유추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대본을 완성한 경험이 없는 그야말로 시작 단계이다.


단짝. 여중생들 사이에서나 쓰일 법한 이 단어가 작업실에 퍼진 것은 실없는 어떤 분의 농담 때문이다. 어색한 자리에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와 자신이 단짝이라고 했다. 그저 웃어 넘겼던 해프닝인데, 그 단어를 어느덧 다들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가 말한 단짝의 정의란 이렇다. 왠지 통하는 사람. 글이나 작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픈 사람. 그는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런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다면서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요즘 자주 통화하는 스터디의 언니가 생각나서 여긴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언니가 정말 단짝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잘 통한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와 나는 가치관도 작품 취향도 완전히 다르다. 작품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관점 또한 전혀 다르다. 그러니 나는 그녀와 작품 이야기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말 상대에 불과하다.


단짝이 없냐는 그 질문이 불편했다. 들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어느덧 이 바닥에 깊은 관계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나의 문제일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게도 그가 정의하는 의미의 단짝이란 것이 있었다.


5년 전,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로 밤을 새던 사람들이 있었다. 전화 통화로 때론 술자리를 하면서 그랬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치지 않았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전문반을 함께 수료한 동기들이었다. 수료 후 다들 보조작가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인력’으로 많은 작품들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그것이 일의 자산이자 꿈을 이루는 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긴 시간 함께하던 그들은 어느덧 연락하지도 않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다른 선택, 드러나 보여진 결핍과 결함, 혹은 또 다른 인간관계와의 틈에서 생긴 거리감 같은 것들 때문이다. 사실 이것들이 아예 만나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는다. 몇 년 안에 각자 자신이 원하던 위치로 올라가 있을 거라 확신했던 그때와 달리 우리는 서로에게 안부를 전할 여유조차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의 근황은 5년째 같다. 반복되는 습작, 공모 응모 그리고 탈락. 소소한 변화에 서로를 비교하며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느낀다. 5년 전엔 서로에게 응원이 되는 존재였다면, 이젠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비교하고 비교당할 수 밖에 없다는 관계라는 것, 그것이 만나고 싶지 않은 절대적 이유다.


이 바닥에서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깨달았다. 당장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입봉을 하게 되더라도 그들에게 알리진 않을 것 같다. 10년. 그렇게 내 곁에서 반짝이다 사라져간 사람들이 한 둘은 아니다. 그들이 나의 그런 소식을 궁금해 할까? 반가워 하기나 할까? 반가운 척하지만 이내 할 말이 소진되겠지.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꺼내는 학교 동창생들과의 추억팔이와는 다르다. 실패의 기억은 긴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게 바래지 않는다. 자랄 만큼 자란 다 큰 어른들의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어느덧 이 바닥 관계에 기대를 갖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을 대하기 편해졌다. 관계가 오랫동안 깊이 지속될 거라는 기대가 없어지니, 누구든 똑같이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낯가리며 쭈뼛대던 때와는 다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상대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습관이거나, 해가 될 사람인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얼굴을 터놓으면 작가가 된 이후에 쓸모 있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비즈니스 관계로 남겨놓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차라리 그게 오랜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바닥의 자산은 인맥이니까.


단짝이라, 생각할수록 낭만적인 단어다. 경쟁심에, 열등감에, 함몰되지 않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초심자의 낭만. 즐거울 때 즐기시길, 낭만은 오래지 않아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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