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당신 堂神을 만나다.

제주 신당 투어

by 평온

자주 가는 책방에 붙은 <제주 당신 堂神을 만나다> 포스터에 혹했다. ‘당신’이라는 이름이 다정하게 다가온 순간이었다고 할까? (훗~~이건 분명 애정 결핍이다.) 즉시 책방지기님에게 기행 신청을 했다.


첫째 날, 동쪽으로 구좌읍 송당 본향당을 시작으로 김녕 - 신촌 -회천에 있는 당들을 기행하며, 제주 사람들의 삶의 원형을 찾아보는 시간이다. 관련 책을 쓰신 홍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며, 길을 걷고 당을 둘러보았다.


제주의 신당은 대부분 마을 설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본향당을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며, 정신적 뿌리로 자리한다고 한다. 당을 둘러싼 커다란 나무, 혹은 신이 좌정하고 있다는 신목들이 고요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엄숙하고 위엄이 느껴졌다. 신새벽 이슬을 밟으며 당을 찾아와 두 손을 모아 가족의 안녕을 빌며 눈물 흘리고 한숨 지었을 제주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각 마을이 만들어진 유래를 둘러싼 신들의 활약에 모두들 왁자하게 웃었다. 척박한 땅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섬사람들만큼이나 제주의 신들도 다 고만고만하고 만만한 듯 여겨졌다.


우리가 익히 아는 신화 속 신들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자기 집 소를 먹고도 배가 고파 남의 집 소까지 잡아먹고 아내 백주또에게 이혼 당하는 신, 소천국. 자기 수염을 잡아당긴 아들을 버릇 없다며 바다에 던져 버렸는데, 장성해서 돌아온 모습에 겁이 바락 나서 한라산 쪽으로 도망가다 바위 아래로 떨어져 숨이 끊어지고 만다. 이런 허당 신이라니!


바닷속 돌덩이의 모습으로, 육지에 닿자마자 뚜벅뚜벅 걸어가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는 미륵신. 자기를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마을에 재앙을 가져오는 모습은 사람만큼이나 쪼잔하고 별 볼 일 없어 오히려 정겹다.

둘째 날, 이번에는 서쪽으로 귀덕 – 한수리 – 도두 – 신사수동을 거쳐 어영에서 끝맺는 기행이었다. 오늘도 홍 선생님의 해설이 이어졌다. 쭈욱 바닷길이라 풍경은 내 눈을 시리게 하고, 바람은 내 살갗을 시리게 하는 날이다. 생업과 관련해 어부와 해녀를 보호하고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는 풍요의 신들이 마을마다 자리하고 있다. 막 추석이 지난 때라 실제 마을제를 지냈던 흔적이 남아있는 당도 있었다.


인간의 나약함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기원을 낳는다. 기원을 담은 당에서 나도 가슴에 두 손을 얹는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아픈 큰딸의 건강을 기원했다. 고개를 들고 두 손을 합장한다. 하늘과 닿아 있다는 신목을 바라보며 세상 아이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들 모두가 강건하기를, 하고자 하는 일에 거칠 것이 없기를.. 나의 욕심이겠지만, 이번만은 욕심껏 빌어본다.


몰래물에서는 도시의 행정에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의 피맺힌 울분을 보았다. 제주 공항 건설과 확장, 하수 종말처리장으로 항거하다 밀려나고, 밀려난 곳에서 다시 또 밀려난 사람들.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일구던 사람들이 강제로 흩어져야 하는, 억장이 무너지는 억울함과 분노가 돌이 되어 서 있었다.

알아야 보이는 것들, 알아야 그 의미를 깨닫는 것들.


그냥 지나쳤던 비석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돌덩이들이 그 뜻을 되찾은 날, 나에게로 와서 그 의미를 가르쳐주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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