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존중을 부탁드립니다.

전하지 못한 편지

by 평온

안녕하세요, 문 선생님.


우리 모임에 선생님이 합류하신 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었네요. 홍 선생님, 문 선생님처럼 60대 나이에도 책을 놓지 않고 공부하시는 모습에 보고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덕분에 저의 60대를 상상하는 마음이 가뿐하고 기대에 차 있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선생님께 글을 전해서 놀라셨죠? 지난 모임 후에 저희가 오랜만에 점심식사를 같이 했잖아요. 그때 제가 선생님 말씀에 많은 불편함을 느껴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냥 넘겼거든요. 다른 분들에 비해 선생님과 제가 공유한 시간이 짧아서 아직은 그다지 가깝다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닌데, 제 마음을 섣불리 전한다는 것이 선생님뿐 아니라 모임 전체에 누가 될까 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옳은 방법이 아니었네요.


그날 식당으로 가는 길, 우리는 봄바람의 매서움에 매실이 길바닥에 다 떨어져 버린 걸 아까워했죠. 그러면서 식사 자리에서도 서로의 텃밭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열무, 콩잎, 고추 얘기로 한참 신났었죠. 그러다가 매운 청양고추가 식사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는 제 말에 선생님은 대뜸 저를 보며

"자기가 살찐 건 매운 걸 좋아해서야."라고 하셨어요.

저는 갑작스러운 선생님 말에

"네~."

하고 넘겨버렸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론 살쪄가는 제 몸에 대한 걱정은 저도 하고 있습니다. 폐경에 갱년기를 맞은 50대 여성에게 비만한 몸은 질병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때문에 저도 요즘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상대의 외모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을 만큼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였던가요? 설령 선생님에게는 친밀함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저는 아닙니다. 저에게는 쉽게 잊히지 않을 폭력적인 강펀치였습니다.

이번 주 만남을 위해 <가장 느린 정의>라는 책을 읽다가 궁금해졌습니다. 비장애-신체 중심적인 이 사회에 맞서 싸우는, 아프고 장애가 있는 유색인 퀴어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이렇게나 열심히 읽고 토론을 준비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공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몸과 나이 듦, 돌봄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장애정의와 동물권과 환경정의로 이어지는 우리의 독서와 토론의 여정. 저는 이 여정 자체가 내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로 걸어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그리고 앞으로 아프고 장애가 있을, 우리 모두를 같이 돌보는 공동체, '함께 돌봄'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몸뿐 아니라 타인의 몸도 존중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선생님의 그냥 소소하고 무의미한 말을 이렇게나 곡해했나 서운해하실 수도 있으나, 같은 학습 공동체 일원으로서, 함께 걸어 나가려면 제 불편함을 말씀드리는 게 맞겠다 싶어 이렇게 전합니다. 세상이 외치는 정상과 규범에 콧방귀 뀌며, 함께 하는 존재들을 '피어나게' 하는 우리의 여정에 앞으로도 여러 선생님들이 계속 함께 하길 바라며, 금요일 모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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