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편지 (1)
(따르릉, 오전 7시 쬐끔만 더 자고 싶은 딱! 그 시간)
-야, 현아~ 니가 준 김치 냉장고 고장났쪄. 기사 말로는 가스가 다 새서 새로 사야 된댄 햄쪄.
옥자 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첫째, 둘째, 넷째 딸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돌리고 똑같은 레퍼토리로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새 거 상 씁서. 어쩔 수 없잖아."
- 아고, 이제 5년만 살고 죽을 건디, 돈 100을 또 써야 될 거냐..
"엄마, 아빠 제사 때도 그 말하던데.. 내가 보기에 엄마는 10년도 더 살아, 혹시나 엄마는 죽고 냉장고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내가 갖다 쓸 테니 걱정말앙 삽써.
옥자 씨는 요즘 5년 있다 죽을 거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삽니다. 78세의 나이, 고생을 많이 해 양쪽 무릎 수술, 네 차례의 허리 수술, 요실금 수술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고지혈증 약, 당뇨약, 고혈압 약에 '와파린'이라는 항응고제 약까지 매일 한 무더기의 약을 먹습니다. 얼마 전에는 돌발성 난청과 이석증까지 찾아와 귀가 잘 안 들리고, 어지러움증도 심합니다. 그러니 '5년만 더 살고 죽겠다'는 장담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현이는 옥자 씨를 이해하고 걱정하다가도, 언제나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옥자 씨 생각을 떨쳐 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동생 보거라, 밥 해라, 청소해라, 물 질어오라, 그것이 나의 숙제였다.
잘못하면 회초리로 매 맞고 쇠 촐 주라, 돼지 밥 주라, 몇 시까지 심부름 다녀오라, 학교 다녀오면 밭으로 오라.
나의 형제는 8남매였고, 내 손을 거치지 많은 애가 없었다.
어느 날, 옥자 씨가 큰딸 현이에게 종이를 건넸습니다. 옛날 위문편지 때나 썼던 하얀 편지지 다섯 장 가득 옥자 씨가 볼펜을 꾹꾹 누르며 쓴 편지글이었습니다. 적적하고 외로운 시간, 찾아오는 사람은 없는데 사람이 그리운 시간, 당신의 자식들을 떠올리며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라는 각각의 제목으로 편지를 쓴 겁니다. <미안하다..>로 시작하는 글은 현이의 마음을 묵직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의 엄마와 어린 자신의 모습이 편지를 읽으며 겹쳐집니다.
현이는 클레이 키건의 <말 없는 소녀>를 읽고, 이어 영화화된 <맡겨진 소녀>를 보았습니다.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할 것도 없어 입을 닫아버린 소녀. 그 소녀가 꼭 현이 자신인 것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칭찬 한 번이 아쉬워서, 애정 어린 눈길 한 번 받아보고 싶어서 재잘재잘 학교 일을 빠짐없이 얘기하지만 아무 반응 없이 일하기 바쁜 엄마를 바라보다 어느 순간 입을 닫아버리고, 눈 마주치기를 포기해 버린 현이. 그런데 지금 현이는 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큰딸은 살림 밑천'으로 불리며, 소처럼, 식모처럼, 일꾼처럼 부려지던 한 소녀가 그려지고, 그 소녀가 자라 또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할지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덜컥거립니다.
너희들 아빠가 돌아가셨다. 남은 돈이 1000만 원이었다. 외할아버지는 00 부락에 집을 하나 사서 살라고 했지만 싫다고 했다.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안된다고 했다...
00가든 할머니를 따라 큰일집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힘들고, 몸이 아프고 하면 너희들을 욕하고 때리고 고함지르고 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용서해라. 미안하다.
옥자 씨는 스무 살에 결혼해 아이를 다섯 낳았습니다. 그리고는 큰 아이 16살, 막둥이가 여섯 살이던 36살의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냈습니다. 그 다섯 명의 아이를 공부시키고, 먹이고 입히느라 안 해 본 것이 없었죠. 중졸의 학력에, 가진 것도 없는 여자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전자제품 외판원, 건물 청소, 목욕탕 청소 등-을 전전하다가 큰어머니를 따라 출장요리일을 시작했습니다.
큰일집 (초상집, 잔칫집, 돌잔치집, 집들이 등) 설거지부터 시작해 요리사가 되는 긴 시간 동안 옥자 씨의 허리가 비틀리고, 무릎 연골이 닳고, 팔뚝에 화상을 입는 나날이 반복되었습니다. 파스를 붙이고, 밴드를 붙이고, 약을 먹고 누워 있다가도 큰일집에서 전화가 오면 벌떡 일어나 기운을 차리고 일을 나섰습니다. 그 돈이 현이와 동생들의 식량이 되고, 학비가 되고, 결혼식 비용이 되고, 작지만 버젓한 집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 달에 20일 정도 일을 했고, 몸은 아프고 망가지고 약으로만 살아왔다.
슬프고 고달프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혼자 울고 외로웠다.
무릎 수술을 하고, 허리 수술을 하면서도 요리사 일을 계속해 오던 옥자 씨는 6년 전, 패혈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습니다. 이후 2번의 허리 수술도 감행했구요.
병원에 입원하면 자식이 다섯이나 되고, 손자가 열 명이 넘어도 간병할 사람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다들 일이 있는 데다 옥자 씨의 병은 단기간에 뚝딱 나을 수 없는, 장기간의 요양을 필요로 했으니까요. 다행히 때맞춰 쉬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아 간병인을 구하고, 각자 n분의 1로 간병비를 부담합니다. 다들 그만큼은 크게 부담이라 여기지 않을 만큼 살고 있어 현이는 그것도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남편이 옆에서 수발들고 간병해 주는 환자가 제일 부럽다는 옥자 씨가 안타깝지만, 현이는 다정한 말 한마디도 어렵습니다. 서로 그런 알뜰한 말, 살뜰한 눈 마주침 없이 살아왔으니 쉽지가 않은 거지요.
나는 친구도 없고, 행복도 없고, 삶은 이런 거다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런데도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살면서 이렇게 많이 글을 써 보기 처음이구나. 쑥스럽다. 이해해라.
요즘 옥자 씨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라도 들고 찾아가면 '고맙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현이는 어색합니다. 아직도 엄마의 힘없고 늙어버린 모습도, 조용조용 다정한 말도 실감 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집에 들어올 시간이 되면 바짝 긴장해 집안 청소를 하고, 동생들 단도리를 하고, 혹시 책 잡힐 게 있을까 돌아보던 그 어린 여자이이가 현이 마음에 살고 있는데...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는데, 어느덧 엄마는 혼자만 세월의 폭탄을 맞은 듯 허리가 꼬부라지고, 휘청거리며,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겨우 산책하는 할머니가 되어 버렸습니다.